건설산업은 주문제작 방식인 동시에 중층 하도급 구조를 가지고 있다. 여러 단계에 걸쳐 사업자들이 함께 노력해 시설물을 완성해 나간다. 자재 등의 소재부터 장비, 엔지니어, 일용직 근로자까지 한 개의 법인이 수행하기 어려운 구조다. 따라서 원도급체인 종합건설사가 전문건설업체에게 하도급을 주는 생산방식이 과거부터 계속 이어져오고 있다. 전문건설업체의 70% 이상은 하도급에 의존한다.
그러나 장기간에 걸친 건설경기 침체로 공사물량이 급감하고 경쟁이 심화됨에 따라 종합건설업체들은 무리한 저가 투찰을 하고 초저가 하도급을 통해 손실을 만회해 왔다. 이 탓에 하도급업체들은 공사비 부족으로 경영상태가 계속 악화되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하도급 건설업체의 경영상태 악화는 그 여파가 건설근로자와 자재ㆍ장비업자들에게까지 미치게 돼 결국은 건설산업 각 주체가 공멸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 하도급업체의 공사비 부족 문제는 무엇보다 시급히 해결되어야 할 문제인 셈이다.
정부도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올 들어 공정거래위원회는 공사비 미지급 행위를 집중 점검해 시정하도록 하고, 불공정행위를 쉽게 신고할 수 있는 익명제보센터를 설치ㆍ운영해 공사비 미지급 행위를 상당수 적발했다. 이러한 노력은 하도급업체가 못 받았던 공사비를 늦게라도 받게 함으로써 공사비 부족 문제를 상당 부분 해소해 준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공정위는 원도급업체가 상위단계의 거래업체로부터 공사비를 못 받아 하도급 공사비를 지급하지 못한 경우 해당 상위업체까지 조사해 시정하도록 했다. 이는 농번기에 저수지 물이 아랫논까지 흘러갈 수 있도록 물꼬를 잘 터주어야 모든 논에서 귀한 알곡을 추수함으로써 대풍의 기쁨을 함께 누릴 수 있는 것과 같이 하도급대금의 물꼬를 터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정부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하도급업체의 공사비 부족 문제는 아직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고 있다. 원도급업체의 불공정행위가 단순히 하도급 공사비를 지급하지 않는 차원에 그치지 않고 하도급 계약단계부터 준공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도급 입찰시 2~3차례의 재입찰과 최저 투찰가 네고를 통해 하도급 금액을 낮게 결정하거나 계약체결시 원도급사가 부담할 사항을 하도급체에 전가하는 행위 등이 아직도 발생하고 있다.
하도급 불공정행위가 위와 같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는 점을 감안할 때 공정위가 경제민주화 일환으로 법개정을 추진해 결실을 거둔 '4대 불공정 하도급 행위에 대한 3배 손해배상제도 도입 확대', '수급사업자에게 의무를 전가하는 부당특약 설정 금지' 등의 제도개선은 그 의미가 크다. 또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건설공사 현장에서도 발생하는 불공정행위를 차단하기 위해 해외건설업 표준하도급계약서를 제정ㆍ시행한 부분도 하도급업체들의 애로사항을 직접적으로 해소하는 초석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부당특약 금지 등 제도개선 이후 가시적인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대한전문건설협회와 중소기업중앙회 등 중소 사업자단체와 공정위, 중기청 등 정부기관, 학계 등으로 구성된 민ㆍ관 합동 특별전담팀이 전국의 현장을 일일이 방문해 중소기업들의 애로사항을 청취하는 과정에서도 부당특약으로 인한 피해가 상당히 개선되고 중소기업들의 가장 큰 애로사항인 대금지급 관행도 좋아지고 있다는 호평이 나왔다.
앞으로도 공정거래위원회가 하도급 공사비 미지급 행위를 지속적으로 감시해 시정하는 한편, 추가공사ㆍ계약변경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공정 행위와 같이 하도급 업체의 공사비 부족을 야기하는 다양한 형태의 불공정 행위에 대해서도 폭넓은 감시와 시정 노력을 기울여 줄 것을 기대해 본다.
구자명 대한전문건설협회 상임부회장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