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니 쓰나미 피해현장 다큐 모티브 '나무 위의 고래' 펴낸 김경주 작가
새로운 자연ㆍ세계 꿈꾸는 소녀 이야기
'헬조선' 현실엔 인문학적 처방 강조
[아시아경제 장인서 기자] "동화는 우리가 잃어버리고 사는 인간의 순수성과 상상력에 관한 이야기이므로 어른과 아이에게 모두 필요한 문학 장르입니다." 시인이자 극작가로 대중에게 잘 알려진 김경주 작가(39)가 어른들을 위한 동화 '나무 위의 고래'를 세상에 내놓은 이유다.
21일 김 작가는 기존에 선보이던 시 세계를 넘어 동화 작품을 창작한 데 대해 "어린 소녀의 독백을 통해 인간 사회의 슬프고 냉혹한 현실, 또 그 속에서 지켜내는 순수와 통찰을 담아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난달 말 출간된 '나무 위의 고래'는 조숙하고 상상력이 뛰어난 10대 소녀 '디아'가 마을에 해일이 찾아온 이후 나무 위로 올라온 보트 한 척을 우연히 발견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또래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며 늘 외롭던 아이는 나무 위 보트에서 홀로 살기 시작하면서 새롭게 자연을 배워나간다. 소녀와 세상을 이어주는 건 라디오 한 대가 전부였지만 일상은 어느덧 숲 속에서 만나는 다양한 관계들로 가득 차게 된다.
매일 나무 아래를 지나가는 우체국배달원과 낙하산에서 나무 위로 떨어진 병사, 형이상학자와 윤리선생 등 다양한 부류의 사람이 소녀가 머물고 있는 나무 주변을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 밖에서 전쟁이 시작되고 사람들이 이 숲의 나무를 베어 무기를 만들려고 하자 소녀는 보트를 움직여 바다로 가는 계획을 세운다.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세상으론 돌아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 작가는 "동화 속 이야기를 처음 떠올린 계기는 2004년 12월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쓰나미 소식이 전해진 이후 피해복구 현장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상을 본 무렵이었다"면서 "파도에 밀려온 고급요트 위에서 놀던 아이들이 해맑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뭉클했다"고 설명했다. 사방이 폐허로 변한 그곳에서 쓸 만한 물건들을 찾아내며 흡족해하는 아이들의 모습에선 삶에 대한 진한 희망이 느껴졌다는 것이다. 작가는 그렇게 해서 버려진 보트 속으로 들어가 사는 한 아이의 이야기를 써내려갔다.
이 동화는 김 작가가 기획한 '모노동화'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기도 하다. 이 시리즈는 젊은 작가들이 연이어 작품을 선보이는 프로젝트로, 각 작가의 글과 어우러지는 그래픽디자인으로 독자들의 감성을 부드럽게 어루만질 수 있게 했다. 권별로 한 개의 대형 이미지가 쪼개어져 본문 곳곳에 실리는 데 '나무 위의 고래'의 경우 커다란 고래 그림이 숨어 있다.
그가 독자들에게 바라는 것은 단순하다.
"나무 위의 보트에서 살면서 자연과 세계를 새롭게 배워가는 이 아이의 숨소리와, 이 아이가 사랑하는 공기들을 써내려갈 수 있었다면 다행입니다. 이 세계는 그곳을 차지하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여행일 뿐만 아니라, 공기들의 여행이기도 하니까요."
또한 작가는 대한민국의 많은 이들이 '헬조선'을 언급하며 불안에 휩싸여 있는 현실에 대해서 인문학적 처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인간들은 생명체 중 햇볕에 가장 연약하고 어둠 앞에서 가장 어리석은 내면을 가진 존재"라며 "그것을 다시 회복하는 일이 인문학이고 인문학을 통해 인간 존재에 대한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가장 좋아하는 작품 속 구절로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모든 여행은 유사하지만 모든 여행은 다르다'.
김 작가는 서강대학교 철학과 졸업 후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극창작과(대본ㆍ작사전공) 전문사에서 공부했다. 2003년 대한매일 신춘문예 '꽃 피는 공중전화'로 등단해 2009년 제28회 김수영 문학상과 제17회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문학부분을 수상했다.
장인서 기자 en130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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