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청 "현재는 국가비상사태…직권상정해야" vs 국회 "직권상정 요건 안돼"
[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 새누리당에 이어 청와대까지 노동개혁5법과 경제활성화법안에 대한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요구에 가세하면서 국회와 당청간 국회법 해석 논쟁이 가열될 조짐이다.
청와대가 '쟁점법안에 대해서도 직권상정을 적용해달라'고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현기환 정무수석이 15일 정의화 국회의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선거구 획정안을 처리하려면 다른 쟁점법안을 우선 통과시켜야 한다'며 직권상정을 간접 시사한 게 도화선이 됐다. 현 수석은 정 의장에게 "선거구 획정도 직권상정 요건이 미비한데, 이것(선거구획정안)만 직권상정하겠다는 국회의원 밥그릇 챙기기"라며 국회를 자극했다.
특히 청와대는 현 수석의 발언에 대해 "정무수석의 정당한 직무수행"이라고 공식적으로 두둔했고 여당도 "청와대가 오죽 답답하면 그런 얘기를 꺼냈겠냐"고 동조하면서 양측간 법해석 논란은 다시 불을 지피게 됐다.
직권상정을 둘러싼 갑론을박은 이달 초 정기국회가 마무리되면서 한풀 꺾이는 모양새였다. 새누리당은 정기국회 마지막날인 지난 9일까지 국회법에 따라 국회의장이 선거구 획정 뿐 아니라 쟁점법안에 대해서도 심사기일을 지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곧바로 이어진 12월 임시국회 들어서는 '직권상정' 언급을 자제해왔다. 정 의장이 "심사기일을 지정하는 부분에 여야가 합의하지 않았고 법안 통과가 안된 것을 국가위기로 볼 수 없다"며 직권상정이 불가능하다고 못박았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쟁점법안에 대해 여야 합의 없이도 직권상정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은 국회법 85조 1항 2호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의 경우'를 근거로 한다. 이 조항에 따르면 국회의장은 국가가 비상사태에 빠지면 여야 합의와 관계없이 심사기일을 지정해 처리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침체에 빠진 업종을 사전에 구조조정을 안하면 전체적으로 큰 위기에 빠지게 되고 그것은 대량실업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언급한 점은 주목할 만 하다. 박 대통령이 경제악화를 위기로 규정한 것은 쟁점법안 처리 지연이 비상사태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게 여당 관계자들의 해석이다.
청와대가 직권상정을 언급하면서 여당도 다시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국회부의장인 정갑윤 의원은 16일 최고위원ㆍ중진연석회의에서 "'비상사태'라는 견해에 논란이 있지만 지금이 비상상황인 것은 분명하다"면서 "특단의 대처가 있어야 한다"고 동조했다. 율사 출신인 김정훈 정책위의장도 "지금 경제 상황이 보통이 아니다"는 말로 국회법에 명시된 비상사태라는 점을 강조했다.
반면 국회는 당청의 이 같은 주장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국회 사무처 고위 관계자는 "국회의장의 주장이 우리의 생각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즉 선거구획정안은 직권상정 대상이 되고 나머지 법안은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얘기다. 국회는 또 최근 율촌 등 법무법인에도 자문을 구해 비슷한 답변을 얻은 것으로 전해졌다.
최일권 기자 ig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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