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고난·투지·환희 담은 산악영화의 시작과 현재를 돌아보다
맬러리의 등정 담은 기록영상서 출발
70년대 후 기술발전으로 장르 다양해져
재난에 초점 맞춘 작품은 대부분 실화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카메라 렌즈를 통해 보는 산은 거대하고 성대하다. 일반 영화에서 다루기 힘든 호흡이 있다. 삶의 투지, 자기완성, 자아확립 등이다. 도전하며 살아가는 인간을 유혹하고 절망하게 만드는 곳. 때때로 환희를 안기기에 산은 우리에게 인생을 가르치는 스승과 같다. 산악영화는 그 기록에서 출발했다.
1909년 로버트 피어리(미국)가 북극에 도달하자 1911년 로알 아문센은 정남극에 노르웨이 국기를 꽂았다. 탐험 경쟁이 뜨거워지면서 영국은 1921~1938년 일곱 차례에 걸쳐 에베레스트에 원정대를 투입했다. 1922년 2차 원정대에 합류한 존 노엘은 카메라를 짊어졌다. "산이 거기 있으니까(Because it is there)"라는 말로 유명한 조지 리 맬러리를 찍기 위해서였다. 고생 끝에 만든 '에픽 오브 에베레스트(1924)'에 기대를 모은 원정대의 기백은 담지 못했다. 맬러리는 8321m에서 멈췄고 눈사태로 셰르파 일곱 명을 잃었다. 오늘날 이 영상은 맬러리의 실종 전 모습에 시적 내레이션이 더해져 기록영상으로서 빼어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산을 심리극의 배경으로 처음 넣은 작품은 아벨 강스의 '철로의 백장미(1922)'다. 눈 덮인 알프스를 배경으로 시점쇼트, 이중노출, 왜곡 이미지 등을 사용해 인물들의 내면을 시각화했다. 이를 필두로 유럽에서는 미국의 서부극과 같이 산악영화 붐이 일었다. 많은 영화인들이 등산가들 못잖은 용기를 내 산으로 향했다. 가장 활기가 넘친 곳은 독일. 제1차 세계대전 패배와 경제공황, 굴욕적인 베르사유 조약 등으로 용기를 잃은 국민에게 산이라는 상상적인 영역을 제공하면서 위대한 독일정신을 회복할 동기를 부여했다. 그들이 표현한 산은 아무도 건들지 않는 야생의 자연이자 사회로부터 도피하고 자신의 무력함을 미덕으로 미화할 수 있는 피난처였다.
특히 아르놀트 팡크 감독은 겨울철 알프스의 설경을 선호했다. 1920년 스키선수들과 등산가들의 다큐멘터리를 시작으로 '성스러운 산(1926)', 피츠 팔뤼의 하얀 지옥(1929), '몽블랑의 폭풍(1930)' 등을 선보였다. 모두 산과 극지를 무대로 한 모험영화로 산을 웅대하게 보여주면서 이를 통한 서술적인 기능에 충실했다. 공통점은 한 가지 더 있다. 레니 리펜슈탈이 출연해 혹한 속에 절벽을 맨몸으로 오르는 등 극한의 자연에서 살아남는 연기를 실감나게 보여준다. 리펜슈탈은 이때 익힌 기술을 토대로 영화사를 설립하고 또 다시 등산을 소재로 한 '푸른빛(1932)'을 만들었다. 감독, 주연, 편집을 모두 담당한 그는 비평과 흥행의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며 자국에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후 한동안 침체기를 겪은 산악영화는 1953년 에드먼드 힐러리(뉴질랜드)와 텐징 노르게이(네팔)가 에베레스트 정상(8848m)에 등정하면서 탄력을 받는다. 이 시기에 나온 작품 중에서 으뜸으로는 에드워드 드미트릭(캐나다) 감독의 '더 마운틴(1956)'이 꼽힌다. 절벽에 못을 박고 밧줄에 의지해 산을 오르는 장면도 실감나지만 재커리(스펜서 트레이시)와 동생 크리스토퍼(로버트 와그너)의 선악구도를 절묘하게 그렸다. 특히 마지막까지 동생을 지키려고 거짓말을 하는 재커리는 한동안 클라이머와 알피니스트들로부터 이상적인 모델로 여겨졌다. 스위스 체르마트를 배경으로 한 '서드 맨 온 더 마운틴(1959)' 등도 산을 향한 순수한 마음에 가족애를 더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산악영화는 1970년대 기술이 향상되면서 다양한 장르와 결합돼 새로운 형태로 생산됐다. 특히 클린트 이스트우드(85)의 네 번째 연출작 '아이거 빙벽(1975)'은 트레바니안의 동명소설(1973)을 사실적으로 구현했다고 평가받는다. 헬리콥터 촬영과 실제 산에 오르는 고생으로 아이거 산의 위용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냉전, 첩보 등의 요소를 적절하게 녹여 산악영화가 상업적으로 변신하는 틀을 제공했다. 이 영화는 유색인종과 여성에 대한 편협한 시각을 드러내 마초영화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후 산악영화에 액션을 가미해 성공한 작품으로는 '클리프행어(1993)', '버티컬 리미트(2000)' 등이 있다. 특히 실베스타 스텔론(69)의 출연으로 화제를 모은 '클리프행어'는 로키산맥의 가파른 절벽과 디딜 틈 없는 암벽 사이, 미끄러운 설원 등을 활극의 장치로 활용해 짜릿한 스릴과 쾌감을 전한다. 국내에서도 서울 관객 111만8583명을 동원하며 인기를 끌었다.
같은 시기, 재난에 초점을 둔 산악영화도 많이 등장했다.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는 이들이 많아진 만큼 사건, 사고도 많아져 그 모태는 대부분 실화였다. 1972년 안데스산맥에서 추락한 우루과이대학 럭비팀의 생존을 다룬 '얼라이브(1993)', 1936년 독일 정부의 부추김에 아이거 북벽으로 향한 안디 힌테슈토이저(플로리안 루카스)와 토니 크루츠(벤노 퓨어만)를 조명한 '노스페이스(2008)', 2003년 블루존캐니언에서 바위와 절벽 사이에 팔이 끼인 에런 랠스턴(40)을 다룬 '127시간(2010)' 등이다. 지난 9월 개봉한 '에베레스트'와 오는 16일 공개되는 '히말라야'도 각각 존 크라카우어의 논픽션소설 '희박한 공기 속으로(1997)'와 MBC 다큐멘터리 '아! 에베레스트(2005)'를 뼈대로 삼았다.
실화 못잖은 현실감 있는 스토리로 주목을 받은 작품도 많다. 'K2(1991)'는 세계에서 가장 등반이 어렵다는 K2봉에 도전하는 산악인들의 모험과 우정은 물론 극한 상황을 극복하고 정상을 밟는 과정을 생생하게 담았다. 프랭크 로담(69) 감독과 가브리엘 베리스타인(60) 촬영감독이 현장 촬영을 고집해 주연 배우 마이클 빈(59)과 매트 크레이븐(59)이 4개월 동안 산악등반훈련을 받은 건 유명한 일화다. 같은 시기 나왔던 '마지막 등정 세레토레(1991)'는 아예 배우들이 실제 등정을 강행해 화제를 모았다. 베르너 헤어조크(73) 감독의 사실주의 세계관이 그대로 담긴 작품으로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의 풍광을 보여주면서 '자연 정복'이라는 말 자체의 모순을 강조한다. 언론의 선정성과 젊은이들의 성급한 명예욕에도 일침을 가한다.
그렇다면 세계 산악인들 사이에 가장 많이 회자되는 영화는 무엇일까. 울주세계산악영화제의 최선희(45) 프로그래머는 "트렌트, 밴프 등의 국제산악영화제에서 '터칭 더 보이드(2003)'의 인기가 꽤 높다"고 했다. 논픽션소설 '친구의 자일을 끊어라(1991)'를 다큐멘터리로 재구성한 영화는 조난을 당하고 이겨나가는 인간의 모습과 심리상황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최 프로그래머는 "부상한 친구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자일을 끊는 장면에서 산악인들이 깊은 공감대를 형성한다"며 "실제 주인공 조 심슨(55)은 현재도 전 세계 최고의 연사로 추앙받고 있다"고 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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