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민진 기자] 서울역 고가(高架)도로 철거가 처음 발표된 건 2008년이다.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은 문화체육관광부, 코레일과 함께 '서울역북부역세권개발 기본구상(안)'을 발표했다.
고가 철거가 핵심은 아니었다. 오 전 시장은 서울역북부역세권에 대규모 컨벤션센터를 세우고 이것을 통해 서울역 주변을 문화, 역사, 관광, 교통이 어우러진 다기능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서울 도심에 대규모 컨벤션센터를 만들면 국제행사 유치나 관광, 그로 인한 경제적 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하다는 판단이었다.
자연스레 주변 지역 슬럼화를 막아 환경개선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계산도 있었다. 서울을 아시아컨벤션산업의 허브로 육성하겠다거나 철도 중심의 국제교류단지로 만들겠다는 슬로건은 꽤 그럴싸했다. 거기에 강남북 균형발전이라는 덮개가 씌워졌다. 반대 목소리는 찾기 어려웠다.
938m 길이의 서울역 고가도로를 걷어내는 대신 철길로 단절된 동-서, 중구 만리동과 연세빌딩 앞 도로를 잇는 대체도로 신설 계획도 밝혔다. 완공 예정시기는 2014년이었다. 하지만 2014년 서울역 주변 모습은 2008년과 달라진 게 없었다.
시장(市長)이 바뀌고 세월이 흐르면서 계획도 달라졌다. 국토교통부는 25일 서울역 고가를 폐쇄하고 보행이 가능한 공원으로 만들기 위해 서울시가 제출한 도로 노선 변경 신청을 승인했다. 이로써 박원순 서울시장이 계획한 서울역 고가 공원화 계획은 탄력을 받게 됐다.
우여곡절이 많았다. 처음보다 수그러들기는 했지만 남대문시장 상인들의 반발은 여전하다. 관련 정부부처와 경찰청도 협조에 미온적이라는 인상이 짙다.
1970년 8월15일 준공해 45년이 된 서울역 고가는 차도로서의 수명을 다했다. 2012년 안전진단 D등급을 받았고 버스나 트럭 같이 무거운 차량은 그 위를 지날 수 없다.
서울역 고가 공원화 사업 논란은 개발과 보존 논리가 부딪힌 사례다. 개발은 환영받지만, 보존은 곧 퇴보로 받아들여지는 게 현실이다. 반대의 가장 큰 명분은 교통혼잡이다.
근대화의 상징이던 청계고가는 2003년 철거됐다. 1971년 8월15일 개통한 청계고가는 서울역 고가보다 폭이 6m 더 넓고 길이는 5~6배 정도 길었다. 당시 청계천 주변상인들의 반대는 극심했다. 청계고가를 철거하면 교통대란이 올 것이라고 했다. 우려했던 혼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청계고가 철거와 청계천 복원은 당시 서울시장이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 밀어붙였던 사업이다. 이후 청계천은 그를 상징하는 수식어가 됐다. 그는 4년 후 대통령이 됐다.
서울시가 수서역 부근에 임대주택을 지으려는 계획에 강남구는 반기를 들었다. 반면 국토부가 수서역세권 일대를 공공주택지구로 지정해 행복주택을 짓겠다는 계획에 서울시는 체계적 개발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반대했지만 강남구는 환영했다.
정치적 입장 차이, 진영논리에 따른 갈등이 정책의 질(質)에 앞서는 일은 빈번하다. 오세훈은 되고 박원순은 안 되는 이유, 국토부는 되고 서울시는 안 되는 이유가 따로 있어선 곤란하다.
김민진 기자 ent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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