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이 비싸야 잘 팔린다는 역설이 정설로 통하는 소비트렌드
경기불황 속에서 소비양극화 뚜렷, 고가 제품들의 완판 행렬
'비싼 상품을 즐기는 것이 사회적 계층이 높다'고 인식하는 소비계층 많아져
[아시아경제 이초희 기자]'비싸야 잘 팔린다.'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싸거나 비싼 제품들만 팔리는 소비 양극화도 심화되고 있다. 디저트나 취미용품 등에 소소한 사치를 즐기는 '작은 사치' 소비 행태 속에서 상징소비가 급부상 중이다.
불황 속에도 유명브랜드를 포기할 수 없는 소비자들이 자신을 제대로 과시할 수 있는 곳에 지갑을 열고 있는 셈이다. 과거 기업에게 이익을 안겨주던 중산층은 점차 소비여력을 잃어가고 있는 반면 고소득층들은 불황 속에서도 신분과시형, 유행추구형 소비경향을 강화하면서 이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 사회학자인 소스타인 베블런은 1899년 출간한 저서 '유한계급론'에서 상류층 소비자는 자기과시를 하고 허영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사치를 일삼는다고 지적했다. 귀금속 같은 사치품의 값이 올라도 오히려 수요가 늘어나는 현상은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른바 '베블런 효과'다.
실제 일반 의류 매장에서는 한 벌에 수백만원 하는 프리미엄 패딩들이 잇따라 품절되고 있다. 유명 수입브랜드의 인기 모델들은 대기명단에 이름을 올려야 할 정도다.
롯데, 현대, 신세계 백화점의 프리미엄 패딩 매출은 전년 대비 세자릿수 이상 신장했다. 올해 날씨가 따뜻해 일반 아웃도어 패딩은 역신장하고 있는 반면 수백만원짜리 프리미엄 패딩은 완판 행렬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캐나다구스의 익스페디션 파카(125만원), 몽클레르의 제네브리어(257만원) 등은 2~3년전 일부 수요자만 입던 프리미엄 패딩이었지만 지금은 흔한 브랜드가 됐다. 올해는 캐나다 브랜드인 CMFR, 고급 구스다운 에르노, 이태리 구스다운 패딩브랜드 헤트레고 등 더욱 비싼 제품들이 백화점에 추가로 입점됐다.
명품과 시계도 두 자릿수 성장을 이어가는 상징 소비의 대표 주자다. 샤넬의 경우 값이 오를수록 수요가 강해지는 특성이 반영된 대표적 브랜드다. 샤넬의 2.55 빈티지, 그랜드샤핑, 보이백 등 인기 핸드백은 이달 초 최대 7% 가격을 인상했다. 하지만 없어서 못 살만큼 대기 수요가 3개월 이상 밀려있다.
특히 지난달 초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기간 명품 매출은 눈에 띄게 증가했다. 지난달 1~5일까지 롯데백화점이 해외명품 매출은 전년대비 23.5% 늘었다. 이는 전체 롯데백화점 매출의 25.2% 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김병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상징소비의 사회학적 요인은 과시적 소비 욕구, 구별 욕구 등으로 해석된다"며 "심리학적으로는 한국 특유의 변형된 후광효과(Halo Effect)로 설명할 수 있다"고 했다.
후광 효과란 일반적으로 어떤 사물이나 사람에 대해 평가를 할 때 일부 특성에 주목하게 되고, 이것이 전체적인 평가에 영향을 줘 대상에 대한 비객관적인 판단을 하게 되는 심리적 특성을 말한다.
그는 여기에 한국사회의 특성이 가미됐다고 분석했다. 김 연구원은 "한국사회에서는 이미 돈이 절대적인 가치가 된 것 같다"며 "'비싼 상품을 즐기는 것이 사회적 계층이 높다'는 식으로 해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초희 기자 cho77lov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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