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미 김이수 서기석 헌법재판관, 의미있는 소수의견…“물포 직사살수, 사람에 중대한 위험”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헌법재판소가 위헌 여부를 결정할 때는 결과만 강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특정한 결과가 나오기까지 9명의 헌법재판관들은 치열한 논쟁을 거듭한다. 헌재 판단에 대한 결과 중심의 평가는 숲은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것과 다름없다.
헌재의 이념성향을 단정해서 판단의 결과물을 평가 절하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법을 다루는 이들의 특성상 다소 보수적인 성향을 보일 수는 있지만, 그것이 판단의 절대적인 요소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역사는 기록되기 마련이다. 헌재가 판단을 내놓은 여러 사건에서 재판관들이 어떤 견해를 내놓았는지, 그 견해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지 여부는 언젠가는 평가의 대상이 된다.
최근 논란의 초점으로 떠오른 경찰의 ‘물포’ 사용 문제에 대해서도 주목할만한 견해를 밝힌 헌법재판관들이 있다. 당시 헌재의 최종 판단은 이들 재판관들과 견해가 달랐다. 이들의 주장은 소수의견이었지만 지금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하는 시사점을 남겼다.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6월26일 박모씨와 이모씨가 제기한 ‘물포사용행위 위헌확인’ 청구를 각하했다. 각하는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해 내용에 대한 판단 없이 종료하는 것을 의미하는 법률 용어다.
헌재는 물포 발사를 둘러싼 헌법소원에 대해 권리보호의 이익이 없다고 판단했다. 한마디로 유사한 사건이 반복될 염려가 없으니 위헌 여부를 판단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당시 판단 대상이었던 사건은 2011년 11월 서울 여의도에서 벌어진 물포 발사 논란이었다. 한미 FTA 범국민대회에 참가했던 박씨와 이씨는 경찰이 물포에 직접 맞아 고막이 찢어지고 뇌진탕을 당했다.
헌재가 당시 각하 판단을 내린 것은 이런 이유였다.
“집회 및 시위 현장에서 청구인들의 주장과 같은 유형의 근거리에서의 물포 직사살수라는 기본권 침해가 앞으로도 계속 반복될 위험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헌재의 결론은 깊은 의문을 남겼다. 경찰의 물포 직사살수를 둘러싼 위험성을 섣불리 간과한 측면이 있다. 실제로 최근 벌어진 11월14일 ‘민중총궐기’ 대회 과정에서 농민 백남기(68)씨는 경찰의 물포에 맞아 쓰러졌고, 병원에 옮겨졌지만 중태에 빠졌다.
당시 경찰은 백씨의 얼굴을 향해 물포를 직사 발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대 2800rpm 세기로 물포에 맞은 뒤 쓰러졌고, 코와 입에서 피를 흘렸다. 경찰은 백씨를 구하려 주변 사람들이 뛰어오자 그들을 향해서도 물포를 발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백씨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여 있다. 경찰은 백씨가 크게 다친 것에 대해 유감을 전하면서도 살수차 운용이 과잉진압이라는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경찰은 “물포를 쏜 경찰관은 백씨가 넘어진 것을 보지 못한 것으로 파악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의도적으로 그런 행동을 한 게 아니라는 설명이다. 경찰 설명이 사실인지 여부는 따져볼 대목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실수이건 아니건 백씨는 중태에 빠졌고, 앞으로도 경찰의 물포 사용 과정에서 유사 사례가 발생할 가능성은 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이정미, 김이수, 서기석 헌법재판관이 지난해 6월 ‘물포사용행위 위헌확인’ 헌법소원 당시 내놓은 의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시 헌재는 다수 의견에 따라 ‘각하’ 처분을 내렸지만, 이들 3명의 헌법재판관들은 ‘위헌’ 의견을 내놓았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물포의 살수방법 중 직사살수는 사람의 신체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물포운용지침에서 직사살수의 경우 물살세기를 3000rpm(15bar) 이하로 살수하고 가슴 이하 부위를 겨냥해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기는 하나, 근거리 직사살수의 경우에는 발사자의 의도이든 조작실수에 의한 것이든 생명과 신체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정미, 김이수, 서기석 헌법재판관은 “물포발사행위는 법률유보원칙 및 적법절차 원칙에 위배되고 집회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해 헌법에 위반된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들 헌법재판관의 주장은 소수의견에 그쳤고, 결과를 바꾸지는 못했다. 하지만 일부 헌법재판관들이 왜 경찰의 물포발사를 ‘위헌’이라고 판단했는지 곰곰이 따져볼 필요는 있다. 헌법재판관 3인의 경고가 사회 변화를 이끄는 단초가 될 수 있다면 의미 있는 소수의견으로 남지 않을까.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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