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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의 봄' 아웅산 수치…27년 투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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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의 봄' 아웅산 수치…27년 투쟁의 역사 이번 미얀마 총선에서 압승을 예상하고 있는 아웅산 수치 / 사진=아시아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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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온라인이슈팀] 8일 치러진 미얀마 총선에서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이 압승을 거둘 것이 확실시됐다.

수치는 독립영웅인 아웅산 장군의 딸로 태어났다. 아웅산은 1940년 일본과 협력해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얀마의 독립을 꾀하다 나중에는 일본 제국주의에 반대해 일본과 맞서 싸운 인물이다. 아웅산은 독립을 앞둔 1947년 암살당했으며, 그의 죽음 뒤에 영국이 배후로 있다는 추정도 있다. 불과 33살의 나이로 숨진 아웅산은 미얀마의 독립영웅으로 추대되었다.


수치는 외교관이었던 어머니를 따라 인도와 네팔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영국 유학과 유엔본부에서 근무 등 오랜 외국 생활을 했다. 수치는 1988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어머니 간호를 위해 입국했다가 '8888항쟁'의 참상을 목격하고 민주화 운동 전선에 뛰어들었다. 8888항쟁은 1988년 8월 8일 일어난 민주화 시위를 군부가 유혈진압해 수천 명의 사망자가 나온 사건이다.

수치는 감동적인 연설로 대중을 사로잡으며 민주화운동 지도자로 급부상했다. 당시 군부가 물러나자 수치 여사는 같은 해 미얀마 민주화운동 세력을 총망라한 민주주의 민족동맹(NLD)을 창설했다. 그러나 이에 앞서 쿠데타를 일으킨 신군부는 이듬해 수치를 가택연금시켰다. 수치는 1991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을 때도, 1999년 영국인 남편이 사망했을 때도 귀국하지 못할 것을 우려해 출국을 포기했다.


1990년 총선에서 NLD는 82% 의석을 차지하며 압승했으나 군사정부는 정권을 넘겨주지 않았다.
2010년 국제사회의 압력으로 연금이 해제된 뒤 수치는 2012년 4월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그리고 이번 총선을 통해 마침내 오랜 민주화운동의 결실을 이끌어냈다.


수치는 총선을 앞두고 인터뷰에서 "NLD가 승리해 대통령직을 내면 나는 '대통령직 위의' 지도자 역할을 할 것"이라며 새 정부의 실질적인 지도자가 될 것임을 시사한 바 있다.




온라인이슈팀 issu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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