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 지난 2005년 12월 9일 예산안과 법안 심의로 한창 바빴을 때 제1야당의 당수인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현 대통령)는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현 새정치민주연합)의 사학연금법 통과를 규탄했다. 특히 "헌정사상 유례없는 날치기, 폭력적 행동에 의해 처리된 사학법은 원천적으로 무효"라며 "지금부터 저와 한나라당 의원들은 사학법 반대투쟁을 시작한다"고 선언했다.
보수정당의 전무후무한 장외투쟁이 시작된 것이다.
10년이 지나 정치권이 또 다시 '교육'을 놓고 몸살을 앓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10년 전의 사학법 논쟁의 데자뷔로 보고 있다. 여야 역학관계, 이슈, 시기 모두 비슷하기 때문이다. 정쟁 주체의 입장만 정반대로 바뀌었다. 결과적으로 사학법 논쟁으로 당시 박 대표는 강력한 리더십 구축에 성공했는데 역사교과서 국정화 투쟁에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같은 성과를 볼 지는 미지수다.
우선 이슈가 교육 관련 사안이라는 점에서 닮았다. 2004년 10월 복기왕 열린우리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사학법은 사학운영의 공공성과 투명성 강화를 위해 사립학교 법인 이사진 7명 중 개방형 이사를 1명(4분의 1)으로 하도록 정하고 학교운영위 등에서 감사 1인을 임명해 내부 감사기능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당시 박 대표는 전교조 출신 이사선임 가능성을 부각시키며 "우리 아이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반미친북의 이념을 주입시키려는 것"이라고 사학법 개정안을 비판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정부의 국정화 고시 강행을 두고서 "우리 아이들이 친일 독재 역사왜곡 그리고 획일화된 국정교과서로 역사를 배우는 일을 결단코 막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교육의 문제가 이념의 문제로 비화되어 갈등을 빚은 점이 같다.
여야간의 역학관계도 유사하다. 2005년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새천년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의 표를 합할 경우 과반의석을 차지했다. 현재는 새누리당이 과반의석을 보유하고 있고, 새정치연합은 당시 한나라당 만큼의 의석수를 갖고 있다. 여당 과반을 확보했고, 다른 쪽은 상당한 세를 보유하지만 상대편을 맞서기에는 부족한 숫자라는 점에서 역학관계가 유사하다.
예산안 처리를 한 달 정도 앞뒀다는 점도 유사하다. 당시에는 12월 말일쯤 예산안이 통과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현재는 국회선진화법 영향으로 예산안은 12월2일에 처리된다. 정기국회, 특히 예산안 심의로 한창인 순간에 여야간의 갈등이 폭발한 것이다.
관건은 향후 수습이 어떻게 되느냐다. 당시 장외투쟁은 원내대표였던 김한길ㆍ이재오 두 사람이 산행을 같이하며 정국 정상화에 합의하면서 53일 만에 끝났다. 그 사이에 예산안은 한나라당 불참 속에 여당 단독으로 표결처리됐다. 합의 이후에도 여야는 사학법 개정을 두고 공전을 벌였다. 분기점은 2006년 4월29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에 사학법 양보를 주문한 시점이었다. 야당이 요구한 개방형이사제 추천 대상 완화를 수용한 것이다. 사학법 개정안은 그로부터 1년2개월이 지난 2007년 7월3일 개정안이 여야합의로 통과했다.
박 대통령의 장외투쟁은 사학법 개정과 함께 강력한 야당 지도자의 모습을 구축하는데 성공했다. 뿐만 아니라 사학재단을 갖고 있는 종교계의 지지를 얻은 것도 성과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성과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사학법에서 한발 물러선 청와대와 여당의 역할이 컸다. 반면 현재는 청와대가 한국사교과서 국정화를 공식화했다는 점에서 타협의 여지는 좁아진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현재 야당의 투쟁분위기 역시 당시 한나라당의 결기에 못미친다는 차이가 있다. 야당의 이번 투쟁이 문 대표의 정치적 자산으로 쌓일 수 있을 지는 좀더 지켜봐야 하는 것이다.
한편 야당 장외투쟁의 한 획을 그었던 새누리당이 최근 새정치연합의 장외투쟁에 대해 민생을 도외시한다고 꾸짖는 것은 묘한 아이러니를 낳고 있다. 앞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5일 "야당을 이끄신 선배 정치인들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의회주의와 통합의 정치를 결코 포기하지 않았고, 길거리 대신 원내투쟁을 선택했다는 사실을 야당이 돌이켜 봐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10년전 라디오에서 "모든 국회 일정을 거부하고 국민 여러분들께 사학법이 이렇게 잘못됐다는 것을 우리가 알리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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