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안 심사 공전·경제활성화 법안 폐기 위기
한중FTA 여야정 협의체 구성조차 못한 채 표류
[아시아경제 김보경 기자]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논쟁이 모든 정치 이슈와 현안을 삼키는 '블랙홀'이 되면서 19대 마지막 정기국회 의사일정이 차질을 빚고 있다. 내년도 예산안 심사와 법안 처리가 졸속으로 이뤄질 우려가 커지고 있으며,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도 구성되지 않고 있다.
여야 지도부는 30일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두고 공방을 이어나갔다.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전날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교과서 문제를 논의할 사회적 기구를 구성하자고 제안한 데 대해 "10ㆍ28 재보궐선거에서 완패하고 난 직후에 갑작스런 제안"이라며 "선거 패배의 책임을 회피하고 교과서 이슈를 통해 야권을 연대시키려는 전략으로 밖에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김정훈 새누리당 정책위의장도 "사회적 기구 제안은 국정화 문제를 총선까지 끌고 가려는 속보이는 제안"이라고 일축했다.
새정치연합은 정부에 예비비 44억원에 대한 자료 제출을 요구하며 공격을 이어나갔다. 이종걸 새정치연합 원내대표는 "예비비 자료가 공개됐을 때 국가 안보에 치명적 위협을 주는 일도 아니다. 떳떳하면 제출하지 못할 이유가 뭐가 있겠나"고 압박했다.
이처럼 여야간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로 충돌하면서 예산안 심사가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전날 열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도 예비비 자료 공개 문제로 고성이 오가는 등 파행됐다. 교과서 정국이 계속된다면 중요한 예산에 대한 논의도 못한 채 결국 예산 처리 시한에 쫓겨 졸속 통과시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여야가 30일부터 가동하기로 한 한중FTA 여야정 협의체 구성도 어려워졌다. 여당은 이중 관세 혜택을 근거로 들며 연내 비준안 처리를 주장하고 있지만, 야당은 FTA 관련 상임위별 피해보전 대책 수립이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교과서 공방으로 20대 총선 룰에 대한 논의도 멈춰있다. 내년 총선이 6개월도 채 남지 않았지만 선거구 획정을 비롯해 공천룰, 지역구ㆍ비례대표 의원 비율조차 결론내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법정 시한인 11월13일까지 본회의에서 획정안을 의결해야 하지만, 농어촌 선거구와 비례대표 의석 수 문제도 매듭짓지 못한 채 제자리 걸음이다. 전날 새누리당이 제안한 정치개혁특위 여야 간사간 회동도 불발될 가능성이 크다.
각종 민생ㆍ경제활성화 법안 처리도 발목이 묶였다. 여당은 전날 법사위에 계류된 무쟁점 법안 처리를 위해 '원포인트 본회의'를 열자고 제안했지만 야당이 이를 거부했다. 정부ㆍ여당이 추진하는 노동개혁을 비롯한 4대개혁 법안도 야당의 협조를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법안들은 19대 국회가 끝나면 자동 폐기 수순을 밟는다.
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