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풍 일으킨 테라노스의 '나노테이너'...FDA선 '불명확한 의료기기' 판정
[아시아경제 이진수 기자]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27일(현지시간) 자체 웹사이트에서 바이오 벤처 신화로 칭송 받아온 캘리포니아주 팰러앨토 소재 테라노스(Theranos)가 사용해온 작은 채혈 용기 '나노테이너(nanotainer)'를 '불명확한 의료기기'로 단정지었다.
미 경제 일간 월스트리트저널은 피 한 방울로 암 진단 등 수백가지 질환 검사가 가능한 테라노스의 기술에 대해 16일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이후 테라노스는 나노테이너로 채혈하는 것을 FDA로부터 유일하게 승인 받은 헤르페스 검사 외에 사용 중단했다. 테라노스 홈페이지 문구는 수정됐다. "우리 테스트의 많은 부분이 피 몇 방울만 갖고도 가능하다", "매우 작은 용기 세 개 분량"이라는 글이 사라진 것이다.
FDA의 이날 발표는 결국 월스트리트저널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테라노스는 엘리자베스 홈스(31.사진)가 19세에 창업한 업체다. 테라노스란 치료(therapy)와 진단(diagnosis)의 합성어다. 스탠퍼드 대학 화학과를 대통령 장학생으로 조기 입학한 뒤 2학년 때 중퇴한 그는 대학 재학 시절 싱가포르 유전자연구소에서 인턴으로 일했다. 그는 당시 중국과 홍콩에서 유행 중인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 진단법 연구에 동참했다.
싱가포르 인턴에 채용된 것은 어린 시절 중국 경험이 많은 도움을 줬다. 그는 유엔에서 아프리카ㆍ중국 지원 담당으로 일하던 아버지를 따라 중국에 살면서 자연스레 중국어도 습득했다.
홈스는 스탠퍼드 대학이 자리잡은 팰러앨토로 돌아오자마자 담당 교수에게 자기가 작성한 특허신청서를 보여줬다. 그것은 단순한 약물 투약이 아니라 환자의 혈액 속 변수들까지 관찰해 이에 맞춰 투약량을 조절하는 '붙이는 패치'였다.
홈스는 대학에서 나와 학비를 종잣돈 삼아 창업에 나섰다. 투자자들로부터 4억달러가 넘는 자본금도 확보했다.
테라노스는 이후 730억달러 규모의 미 진단ㆍ검진 업계를 뒤흔들만한 엄청난 잠재력의 신생 기업으로 우뚝 섰다.
미 경제 격주간지 포브스에 따르면 홈스는 총자산 규모 47억달러로 가장 어린 여성 자수성가형 부호다. 테라노스의 기업공개(IPO)가 단행될 경우 홈스의 테라노스 지분 가치는 더 뛰어오를 판이었다.
논란이 이렇게까지 커진 것은 '바이오 벤처의 신데렐라'로 불리는 홈스에게 뭔가 특별한 게 있다는 주변 분위기도 한몫했다. 어린 나이에 사업가도 아니고 과학자가, 그것도 미모까지 갖춘 금발머리 여성이 바이오 벤처의 아이콘으로 떠올랐으니 그동안 모두가 홈스에게 사로잡힐만도 했다.
홈스는 지독한 일벌레로 알려져 있다. 옷 고르는 시간이 아까워 으레 검은 폴라티나 흰 실험실 가운을 입곤 한다.
그는 미 기업 역사상 가장 화려한 이사진을 꾸렸다. 국무부ㆍ재무부ㆍ노동부 장관을 역임한 조지 슐츠, 전 국방부 장관 빌 페리, 전 국무부 장관 겸 국가안전보장 담당 대통령 보좌관 헨리 키신저, 전 상원의원 샘 넌이 대표적인 예다.
객원 법률 고문 데이비드 보이스는 1998~2000년 마이크로소프트(MS)를 대상으로 진행한 반(反)독점 소송에서 맹활약한 인물이다.
일부에서는 홈스가 난관에 부딪칠 때마다 뛰어난 인물들을 앞세워 난관으로부터 벗어나곤 한 게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
이진수 기자 commu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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