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氏, 카드에 총맞고 페이에 확인사살?…1000원짜리 생수도 신용카드로
#1 편의점 알바생 이주현(27세ㆍ가명)씨는 계산대에서 손님을 맞을 때 현금을 받는 것보다 카드결제를 하는 것이 편하다고 느낀다. 예전엔 거스름돈을 잘못받아 시재점검표가 마이너스가 되는 바람에 자기 돈으로 매꾸는 일이 잦았다. 이제는 생수 한병을 사가도 카드결제를 하는 손님이 많아 그런 부담이 덜해졌다. 이 씨는 "휴대폰이 등장하면서 공중전화기가 폐품처리된 것처럼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역시 조만간 무용지물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2 회사 휴게실 자판기 커피로 아침을 시작하는 김승환(35세ㆍ가명)씨는 얼마 전 커피를 뽑으러 갔다가 낭패를 봤다. 집에서 뒹구는 100원짜리 동전을 기껏 챙겨갔더니 그새 자판기가 지폐 전용으로 바뀐 것이다. 하는 수 없이 김씨는 지갑에서 지폐를 꺼내 종이컵 커피를 뽑았다. 김 씨는 "발렛파킹이나 축의금처럼 특수한 상황 빼고는 현금을 사용해야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느낀다"면서 "만일의 사태를 대비할 때만 쓰는 '비상금'처럼 현금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현금 사용량이 신용카드에 밀리고 모바일 결제에 치여 급감하고 있다. 1000원 안팎의 소액 결제에도 체크카드나 신용카드를 쓰는 사람들이 늘면서 동전은 자취를 감췄다. 이같은 흐름은 통계로도 잡힌다. 27일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1회 체크카드 결제액은 작년 8월 2만5812원에서 올해 2만4542원으로 줄어들었다. 1회 신용카드 결제액 역시 작년 4만6090원에서 올해 4만3816원으로 감소했다. 정훈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예전에는 4%대에 불과했던 1만원 미만 신용카드 결제 비중이 최근 40%까지 확대됐다"며 "만원 미만의 소액 결제는 현금으로 내던 소비자들이 최근에는 1000원을 결제하면서도 신용카드를 쓴다"고 설명했다.
◆ 삼성페이가 동전 몰아내?
이같은 카드결제 소액화는 가맹점주와 카드사, 고객 등이 모두 소액결제 카드 사용에 익숙해지면서 나타나는 변화다. 신용카드를 통한 결제가 간편할 뿐만 아니라 부가서비스나 포인트, 마일리지 적립, 소득공제, 할인 등의 혜택이 큰데다 가맹점에서도 1000원 이하 금액도 카드결제를 해주는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모든 돈거래를 '카드로 긁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이다. 1000원 이하면 현금결제를 유도하는 분위기도 사라진지 오래다.
쓰임새가 더 줄어들고 있는 것은 동전이다. 올해 1~9월 누적 500원 화폐발행액은 471억3100만원, 환수액은 53억2800만원으로 환수율은 11.3%에 그쳤다. 작년 환수율(31.8%)의 1/3 수준이다. 이밖에 100원(28.9→27.6%), 50원(31.8→21.4%)의 환수율도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감소했다. 정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카드보급률이 세계최고 수준인데다 신용카드 혜택도 많다"며 "고객들도 웬만하면 신용카드를 쓰려는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현금사용은 줄고 카드 사용은 늘고 있다"고 말했다.
현금 사용이 줄어드는 것은 삼성페이로 대표되는 모바일 결제가 확산되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지난 8월20일 공식 출시된 삼성페이는 약 2개월만에 하루 결제 건수가 10만건 누적 가입자 100만명, 누적결제금액 1000억원 이상을 기록했다. 카드 업계 관계자는 "삼성페이의 등장으로 휴대폰으로 결제를 하는 현상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며 "휴대폰 하나만 가지고도 생활하는데 큰 불편이 없다는 것은 우리 삶의 엄청난 변화"라고 강조했다.
◆ 현금없는 사회, 좋기만 할까?
카드결제가 보편화되면 지하경제 양성화와 탈세 방지에도 효과가 있다. 현금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카드결제나 모바일결제 등으로 인해 반드시 기록을 남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인 맥킨지에 따르면 현금결제 비중이 50% 이하인 국가들의 지하경제 규모는 평균 12%인 반면, 현금결제 비중이 80% 이상인 국가들의 지하경제 규모는 평균 32%로 두배 이상 높았다. 이효찬 여신금융연구소 실장은 "현금없는 사회를 만들면 현금 사용으로 유발되는 각종 범죄를 감소시킬 수 있다"며 "강도, 절도 등 현금보유와 직접 관련있는 범죄 외에도 탈세, 뇌물 공여 등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모바일이나 카드결제는 보안사고나 정보유출의 문제가 있다. 임철재 한국은행 결제감시부장은 "인터넷 결제를 이용하지 않는 사람들은 72.3%는 정보유출 가능성과 보안 문제를 우려하고 있다"며 "이같은 문제가 해소된다면 인터넷결제가 더 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