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유제훈 기자, 정현진 기자] "일부 교과서가 북한에서 주장하는 주체사상을 무비판적으로 개재하고 있다."(황교안 국무총리)
"역사교과서에서 김일성 주체사상을 미화한 부분을 확인했나?"(민병두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
정부의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방침이 좌-우 진영간 대립을 극단적으로 고조시키고 있다. 현재 한국사교과서가 '좌편향'으로 서술돼 있다는 정부ㆍ여당, 꼭 그렇지는 않으며 검정체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학계ㆍ야당의 주장은 타협의 여지 없이 팽팽하다. 문제가 된 교과서의 실제 내용을 살펴본다.
◆'주체사상' 논란=정부ㆍ여당은 현행 한국사교과서가 북한의 선전선동 목적으로 만들어진 주체사상을 그대로 소개하는데 그치고 있다고 비판한다. 구체적 비판 없이 주체사상을 원문 그대로 인용, 학생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 대표적 근거는 금성출판사 한국사교과서의 407쪽이다. 해당 교과서에는 '더 알아보기'란 항목으로 북한 당국이 주장하고 있는 '주체사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교과서를 확인해보면 그 내용은 북한 당국이 주장하는 주체사상을 인용해 설명한 부분이다. 교과서 집필진이 주체사상의 필요성을 역설한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문제가 된 서술 부분 뒤에는 "주체사상은 김일성주의로 천명되며 유일지배체제의 사상적 바탕이 됐다"는 비판이 적시돼 있다.
이 서술은 교육부의 집필 기준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교육부가 최근 고시한 2015 역사과 교육과정에는 성취기준으로 '북한 사회의 변화와 오늘날의 실상을 살펴보고, 평화 통일을 위해 남북한 사이에서 전개된 화해와 협력의 노력을 탐구 한다'고 제시돼 있고, 이를 위한 학습내용으로 '주체사상과 세습체제'가 기재 돼 있다.
학계와 야당도 이를 근거로 정부ㆍ여당의 좌편향 주장이 부적절하다고 지적한다. 송양섭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는 "주체사상에 대해 비판을 하더라도 (학생들이) 최소한 어떤 내용인지는 알아야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6ㆍ25 남침' 논란=6ㆍ25 전쟁의 개전 책임 소재도 논란 중 하나다. 정부ㆍ여당은 기존 교과서들이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6ㆍ25 전쟁의 책임이 남북한 모두에 있는것처럼 서술했다'고 비판한다.
미래엔 교과서에 '탐구활동'으로 소개된 '역사앞에서'도 그 중 하나다. 탐구활동에는 역사학자 김성칠(1913~1951)이 6ㆍ25 전쟁 중 남긴 일기를 인용, "그들은 피차에 서로 남침과 북벌을 위하여 그 가냘픈 주먹을 들먹이고 있지 아니하였는가. …(중략)…대한민국의 요로에 있는 분들이 항상 북벌을 주장하고 (하략)…." 라고 서술했다.
그러나 해당 교과서 316쪽에는 "1950년 6월25일 새벽, 북한은 전면적으로 남침을 해왔다"고 개전 주체를 명백히 서술하고 있다. 교과서에 적힌 김성칠의 일기 내용도 남한의 '공동책임론'에 무게를 둔 기술이라기보다는 당대인의 인식을 엿볼 수 있는 사료(史料) 수준이다.
현직 역사교사인 A(50ㆍ여)씨는 "모든 교과서에서 6ㆍ25 전쟁이 남침이라는 사실(Fact)을 적시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며 "김성칠의 일기가 인용된 것은 당시 신성모 국방장관이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라는 말을 남길 정도로 남북간의 군사적 갈등이 이어지던 국면을 보여주는 사료로서 개전책임과는 별개의 내용"이라고 말했다.
◆경제발전 서술 논란=정부ㆍ여당에서는 현행 교과서가 대한민국의 눈부신 경제성장을 부정적으로 기술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황우여 교육부장관 겸 사회부총리는 지난 12일 국정화 발표 기자회견에서 "(좌편향 때문에) 우리 아이들이 근대 이후 산업화와 민주화를 최단시기에 달성한 세계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자랑스런 대한민국 역사를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대표적 사례가 미래엔 교과서 340쪽이다. '구조적 취약성이 심화되다'라는 소주제 하에 "외자유치를 통한 수출주도형 성장정책으로 우리경제의 대외 의존도가 심화됐다. 이런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은 1990년대 말 외환위기로 이어졌다.", "대표적 기업인들은 각종 혜택을 악용해 횡령과 비자금 조성을 일삼고…실형을 선고받은 기업인 대부분은 경제발전에 기여했다는 명분으로 특별사면 됐다"는 대목이다.
하지만 교과서에는 한국의 눈부신 경제성장을 서술하는 부분도 적잖다. 340쪽에는 재벌체제에 대해 "물건 하나라도 더 수출하기 위한 기업인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한강의 기적은 불가능했다. 기업인들은 우리 기업에 대한 국제적 인지도가 낮은 여건에서 새로운 해외시장을 개척해 나갔다"고 서술돼 있다. 또 '경제적 고도성장을 이룩하다'는 소단원에서는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이후 국민소득은 무려 19배 이상 증가했다.…(중략)…급속한 경제성장을 통해 가난에 시달리던 국민생활이 크게 윤택해졌다"는 부분도 있다.
◆건국ㆍ독재 표현 논란='건국절'과 '독재' 표현을 둘러싼 내용도 꼽힌다. 검정교과서 대부분은 1948년 단독정부와 관련해 대한민국에는 '정부 수립', 북한에는 '국가 수립'이라는 표현을 사용,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격하시켰다는 것이다.
문제가 된 두산동아 한국사교과서 273쪽을 보면, "대한민국 정부가 출범하였다"라는 말과 함께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수립을 선포하였다"는 내용이 동시에 적혀 있다. 하지만 해당 면에 있는 두 개의 소제목에 남북 모두 '정부' 수립이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정부·여당은 또 '독재'라는 표현을 두고 북한에는 단 2번, 남한에는 무려 24번이나 사용됐다는 점을 들어 좌편향이란 주장을 하고 있다. 황우여 교육부장관 겸 사회부총리, 김재춘 전 교육부차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끊임없이 지적하는 주제다.
하지만 분석 결과 이 대목은 단순 비교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교과서에서 현대사를 기술한 부분은 58쪽이고, 이 중 북한사(史)는 2.5쪽에 불과해 독재라는 표현의 사용빈도에도 자연히 차이가 발생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미래엔 교과서 집필진인 송 교수는 "분량차이도 있거니와, 북한의 독재를 비판하는 용어로 유일체계, 우상화 등 다양한 서술어가 등장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같은 주장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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