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류정민 차장]영화보다 더 미스터리한 얘기다. 의혹의 시작은 2012년 5월21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충격적인 사실을 발표했다. 이른바 '단군 이래 최대 사기 사건' 주인공인 조희팔(당시 55세)씨가 중국에서 사망했다는 내용이다.
발표된 내용은 이렇다. 2011년 12월18일, 조씨는 한국에서 온 여자친구 K씨와 중국 칭다오(靑島)의 호텔 식당에서 술을 마셨다. 이후 급체를 호소해 구급차로 병원으로 옮겨지던 중 급성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경찰은 조씨의 중국 호구부(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여권을 확인했다. 응급진료와 사망진단을 맡은 의사도 면담했다. 시신화장증도 입수했다. 유족이 참관한 가운데 장례식을 치른 동영상에는 조씨가 입관된 모습도 담겨 있었다.
조희팔은 정말 그렇게 세상을 떠난 것일까. 조희팔은 누구일까. 그는 서울과 대구 등에서 건강용품 판매 사업을 통해 고수익을 올릴 수 있다면서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전형적인 다단계 방식이었다. 피해자가 속출했다. 무려 3만여명에 이른다. 그들은 4조원에 가까운 피해를 당했다.
조희팔은 2008년 12월 중국으로 밀항했다. 중국으로 도망간 조희팔을 잡고자 백방으로 찾아 나섰던 피해자들 입장에서 경찰 발표는 '청천벽력'이었다. 경찰 발표는 처음부터 의혹투성이였다. 조희팔은 사망 직후 화장돼 경찰은 유전자 감식을 하지 못했다. 죽었다는 발표를 입증할 '결정적인 증거'는 확보하지 못한 셈이다.
경찰이 조희팔은 숨졌다고 발표했는데 이를 믿지 못하는 현실, 분명 정상은 아니다. 문제는 그 원인을 경찰 스스로 제공했다는 점이다. 조희팔 사건을 둘러싼 부패 의혹은 수사당국, 특히 경찰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대구 지역을 중심으로 조희팔 측의 로비 대상이 된 경찰이 하나, 둘이 아니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논란이 증폭되자 이번에는 경찰청장이 직접 나섰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조희팔이 죽었다고 확정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면서 "조희팔 사망과 관련한 물증은 현재로써는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과거 조희팔이 숨졌다고 발표한 주체는 다름 아닌 경찰이다. 그런데 경찰 수장이 조희팔 사망에 의문을 제기했다. 지금 경찰은 조희팔을 쫓고 있다. 조희팔이 숨진 게 사실이라면 경찰은 '유령'을 쫓고 있는 셈이다. 사건은 급박하게 전개되고 있다.
조희팔의 최측근 강태용(54)씨가 최근 중국에서 검거돼 한국 송환을 기다리고 있다. '조희팔 죽음의 진실'이 드러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관측도 나왔다. 하지만 변수가 생겼다. 2008년 12월 조희팔 밀항을 도왔던 외조카 유모(46)씨가 20일 대구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유씨는 조씨가 숨지기(실제로 숨졌다면) 전까지 그의 곁을 지켰으며, 행적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의혹의 실타래가 풀릴 것처럼 보였지만, 다시 꼬이는 양상이다.
10월21일은 경찰 창설 70주년 기념일이다. 경찰은 잔칫날을 맞았지만, 여론의 격려는커녕 의혹의 시선만 받고 있다. 여론의 삐딱한 시선도 그만한 이유가 있다.
지난해 유병언이라는 '유령'을 쫓아다닌 경찰 모습을 1년 만에 다시 보게 될지 누가 예상했겠는가.
류정민 차장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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