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정부의 공기업 임금피크제 도입이 일사 천리다. 정부가 지난 8월 말 '전면 도입' 방침을 발표한 후 1개월 만인 9월 말 현재 지방공기업의 70%, 공기업의 50%가 도입을 완료했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하지 않으면 성과급을 깎겠다는 정부의 압박에 지방공기업 노조들이 백기 투항을 한 덕분이다.
지방자치단체 소속 공기업에 대해서도 예외는 없다. 행정자치부는 지방공기업들에 연내 도입하지 않을 경우 경영평가 시 감점(-2점)을 부여하고 조기 도입 시 가점(9월 내 1점 등)을 주기로 하는 등 강하게 압박을 해왔다. 행자부는 특히 정종섭 장관이 직접 나서 주요 공기업 최고경영자(CEO) 간담회를 잇따라 여는 등 임금피크제 도입을 밀어붙이고 있다. 지방공기업들도 이에 '임금 삭감'이라는 카드 앞에서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어 보인다.
하지만 특정 시기 정부가 내놓는 '시책'을 따르냐 마느냐에 따라 공기업 근로자들의 임금 등 근로조건이 좌우되는 현실을 어떻게 봐야 할까? 직장을 다니는 사람의 입장에서, 누구에게나 임금은 오로지 외부의 변수가 아닌 근로 성과와 업무 실적, 경영 성과에 의해 평가·책정되어야 하는 게 합리적이고 상식적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정부 정책을 준수하느냐 마느냐는 성실히 현장에서 직무를 수행하고 있는 공기업 근로자들과 전혀 상관없는 얘기다.
반면 서울시의 경우 정반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국 공기업ㆍ지방공기업들의 높은 도입률과 달리 서울메트로, 서울도시철도공사 등 주요 지방공기업들이 아직까지 임금피크제 도입을 확정짓지 않고 있다.
이는 서울시가 "임금피크제 도입은 노사 자율에 맡기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는 현재 노사 대표와 함께 운영하는 '노사정 서울모델협의회'를 한 축으로, 회사별 노사 간 개별 협상을 또 다른 축으로 각각 임금피크제 도입을 논의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와 관련해 지난달 15일 열린 서울모델협의회에 참석해 "일방적으로 임금피크제를 밀어붙이지 않을 것"이라며 노사 간 자율 협상에 맡기겠다는 입장을 밝히는 등 자율 협상 분위기를 장려하고 있다.
이 같은 자유로운 분위기 탓일까. 정부가 주도한 임금피크제 강행 공기업들과 달리 서울시 산하 지방공기업들에서는 '+α'가 기대되고 있다. 시는 서울메트로ㆍ서울도시철도공사 등 주요 기업의 노조 측의 제안으로 임금피크제 외에 노동시간 피크제를 통한 일자리 나누기 등 다양한 방안을 함께 논의 중이다.
이에 따라 이르면 이달 내에 노사 간 충분한 협의를 거쳐 임금피크제를 포함한 다양한 일자리 창출 방안을 담은 서울시 차원의 노사정 협약을 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서울시의 전망이다.
정부가 임금피크제로 절감한 인건비만큼 청년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것이라면 서울시는 그 이상의 일자리 확보 방안을 내놓을 계획으로 알려졌다. 노사정 협의를 통해 10월 중에 임금피크제 도입 계획과 다양한 청년 일자리창출 방안을 협약 형태로 도출하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정부의 강행ㆍ압박 분위기와 전혀 다르게 노사 간 자율적 분위기에서 진행되는 서울모델협의회가 내놓을 옥동자가 어떤 것일지 궁금하다.
만약 정부 시책을 따를 필요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공기업 근로자들의 근로조건을 변경하는 일이라면 충분히 설득하고 협의하는 과정과 절차가 중요하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적지 않다.
강압 속에서 마지못해 소액의 임금 삭감과 신규채용 몇 명에 그친 다른 공기업들과 달리 노사 간 창의적 아이디어가 담긴 진정한 청년 일자리 창출 정책이 담겨 있길 기대한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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