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위상 높이고 지하경제 수장 긍정적 효과외에도 물가상승, 소비자 혼란, 화폐 주조 비용등도 막대해
[아시아경제 구채은 기자] '화폐개혁(리디노미네이션) 추진 의사를 밝힌 것이 절대 아니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이주열 한국은행의 총재가 화폐개혁 의사를 내비쳤다는 이슈가 일파만파로 번지자 한은 발권국에서 낸 보도해명자료입니다. 원론적인 차원에서 필요성을 공감했을 뿐이라며 '절대'라는 말까지 붙여서 적극 부인하고 나선 것입니다. 하지만 좀처럼 여론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그만큼 '화폐개혁'이란 것이 국민적 관심사가 높았던 주제기 때문이겠죠.
리디노미네이션 한 나라에서 사용하고 있는 모든 은행권 및 주화의 액면을 가치의 변동없이 동일한 비율로 낮춰 표현하거나 이와 함께 화폐의 호칭을 새로운 통화 단위로 변경시키는 조치를 뜻합니다. 실제로 요즘 음식점 차림표를 보면 5000원짜리 국밥을 5.0 4500원짜리 국수를 4.5라고 쓰는 경우도 있죠. 이것이 실제 화폐단위가 된다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한은 총재 중에선 박승 전 총재가 그 필요성을 여러차례 거론하기도 했었죠.
리디노미네이션이 되면 좋은 건 돈의 위상이 높아진다는 겁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환율이 1000원을 넘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합니다. 경제규모가 커지다보니 통계 수치가 '경'을 사용해야 하고 단위가 너무 커 불편하다는 점도 거론됩니다.
예컨대 외국인 관광객이 우리나라에서 쇼핑을 하면 겪는 어려움 중 하나가 환율이 너무 높아 물건값을 계산하고 거스름돈을 받는데 오래걸린다는 점이죠. "이 나라는 돈 가치가 왜 이래"하면서 우리나라를 깔볼 수 있다는 거죠. 또 리디노미네이션을 하는 과정에서 '검은 돈' 이른바 지하경제에서 쓰이는 돈을 아예 수장시킬 수 있다는 점도 플러스 효과로 거론됩니다.
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찮습니다. 예컨대 900원 하는 생수병을 리디노미네이션 해 0.9원으로 받는다고 칩시다. 소수점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편의점 주인들이 1원으로 무더기로 올릴 가능성이 큽니다. 물가가 더 올라갈 수 있는 가능성입니다. 소비자의 머릿속도 복잡해집니다. 담뱃값 4500원이 4.5원으로 떨어지면 가격이 싸졌다는 착각에 빠져 소비를 늘릴 수도 있습니다.
비용도 많이 듭니다. 은행 현금자동입출금(ATM)기나 각종 자동판매기를 몽땅 교체해야 합니다. 은행 전산시스템과 여러 회계 컴퓨터 시스템도 바꿔야 하죠. 화폐를 새로 만들어야 하는 주조비용도 어마어마하게 들어갈겁니다. 일부는 시장에서 처리하겠지만 기획재정부 등 국가예산을 들여야 하는 비용이 많겠죠.
우리나라도 지금까지 두 차례의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했습니다. 제1차 리디노미네이션은 1953년 2월 15일 '대통령긴급명령 제 13호'를 공표해 했습니다. 이 당시에는 전쟁으로 경제상황이 궁핍한 상황에서 거액의 군사비 지출로 인플레이션의 압력이 커질 때입니다. 통화의 대외가치는 폭락한 상황이었죠. 이를 수습하기 위해 화폐 액면금액을 100대 1로 절하하고, 화폐단위를 圓(원)에서 (환)으로 변경(100圓 1)하는 조치를 단행했습니다.
제2차 리디노미네이션은 1962년 6월 10일 '긴급통화조치법'에 의해 구(舊)권인 단위 화폐의 유통과 거래를 금지하고 화폐 액면을 10분의 1로 조정한 새로운 ´원´ 표시 화폐(10→1원)를 법화로 발행한다는 내용으로 실시했습니다. 당시 정부는 퇴장자금을 양성화하여 '경제개발계획'에 필요한 투자자금으로 활용하고 과잉통화를 흡수하여 인플레이션 요인을 제거하는 목적에서 이를 시행했다죠.
하지만 이 때야 '계획경제' 기반의 시스템이 공고하던 때라 리디노미네이션에 따른 이해관계 문제도 첨예하지 않았던 시절입니다. 그런데 지금 리디노미네이션을 한다면 여러 사회적 논란이 끊이지 않을 소지가 있는 것이죠. 공(功)만큼 과(過)도 부각될 소지가 큽니다. 그래서 화폐개혁을 두고 "어느 경제관료가 자기 임기 때 그걸 하려고 하겠냐?"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죠.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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