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 빈 시장, 문닫은 곳도 많아…"도와주세요"라며 한숨쉬는 상인들
[아시아경제 이광호 기자]"제발 도와주세요. 1개만 팔아주세요. 장사가 안돼 굶어 죽을 지경입니다."
2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 시장. 민족 대명절인 추석을 일주일 앞두고 있었지만 명절의 들뜬 분위기는 느낄 수 없었다.
농수산물 상점 주변에는 고요한 적막만 흘렀다. 한 생선가게 주인은 굴비가 팔리지 않자 국거리용으로라도 싼값에 팔려는 듯 지느러미를 마꾸 떼내고 있었다.
영등포 시장에서 십 수 년째 건어물상를 운영하고 있는 김혜자(53·가명)씨는 "해가 갈수록 젊은 사람들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고 나이든 단골들만 간간히 오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어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보다 품질이 좋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재래시장을 찾아온다"며 "질도 좋고 가격도 싼 만큼 재래시장을 많이 이용해 달라"고 당부했다.
채소 가게, 떡집, 곡물 가게 등도 한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문을 열지 않은 가게들도 적지 않게 눈에 띄었다.
채소를 다듬는 할머니, 떡을 빚는 할아버지, 밤을 까는 아주머니 등은 손님맞이에 여념이 없었지만 무색했다.
25년간 떡집을 운영해온 이국헌(71)씨는 "명절 특수는 옛말"이라며 "쌀 한말 정도 분량을 맞추겠다는 주문은 이제 거의 없고 추석 제사상에 올릴 정도만 사가는 손님이 대부분"이라고 푸념했다.
비슷한 시각 양천구 목동 시장도 한산하기만 했다. 추석 명절이면 사람들로 한창 붐벼야 할 과일, 쌀, 곡물 가게 등에는 물건이 팔리지 않아 상품이 그대로 진열돼 있는 곳이 많았다.
곡물 가게를 운영하는 홍순자(57)씨는 "이젠 추석과 같은 명절이 대목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전통시장이 어렵다"며 "하루 종일 고추를 한 근(600g)도 팔지 못했다. IMF 때 보다 장사가 안돼 굶어 죽을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정육점을 운영하는 최태권(43)씨는 "고기 가격은 올랐는데 소비자 가격은 비슷하게 팔거나 가격을 낮춰 팔고 있다"며 "그런데도 경기가 어려우니까 비싸다고 안 사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추석선물을 사러 나온 주부 최나연(42)씨는 정육점 앞에서 가격을 유심히 지켜보더니 발길을 돌렸다. 최 씨는 "더 싸고 좋은 것을 사려고 여기저기 둘러보고 있지만 저렴한 게 별로 없다"며 "주머니 사정상 최대한 차리는 음식의 양을 줄이고 값이 많이 오른 상품은 다른 것으로 대체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다른 주부 김정자(68)씨는 "손자들 때문에 돈을 좀 쓰려고 했는데 시장에 와서 보니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고 아쉬워 했다.
이광호 기자 kwa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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