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세사 클리너 세계 1위' 웰크론 회장…직원에 목표 달성 성취감 안겨주고파
11년째 임직원과 8시간씩 연례행사
집 담보로 사업시작, 넉달만에 위기
7년내 그룹 매출 2조원 달성 목표
발전사업 등 신수종사업 다각화
[아시아경제 조강욱 기자] 지난달 28일 서울 양화대교 밑에 위치한 양화공원. 조금씩 저녁 어스름이 내리고 있는 이곳에 빨강, 파랑, 초록 등의 색깔로 상의를 맞춰 입은 젊은이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하나 둘씩 모여 들었다. 맨 앞에선 모자부터 시작해 반바지까지 검정 일색의 한 청년이 성큼성큼 걸어오며 이들을 이끌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오히려 다른 이들이 쫓아오지 못할까 속도를 조절하는 모습이었다.
이날 모인 인원은 대략 400명. 모두가 준비된 자리에 질서 정연하게 앉아 땀을 닦거나 물을 마시며 숨을 돌렸다. 선두에서 이들을 이끌었던 청년도 모자를 벗고 땀을 식혔다. 언뜻 여느 젊은 직원들과 비슷해보였지만 모자를 벗은 그는 젊은이가 아니었다. 침구 브랜드 '세사리빙', 한방 여성용품 브랜드 '예지미인'을 보유하고 최근에는 신재생 에너지기업으로 변신하고 있는 웰크론그룹의 이영규 회장이었다. 이 회장에게 다가가자, 그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기자에게 컵라면 하나를 건넸다. "같이 드실래요?". 그렇게 이 회장과 함께 컵라면을 먹으며 그의 진솔한 속내를 듣게 됐다.
이날은 웰크론그룹 전 계열사들이 모여 무려 30km의 거리를 걷는 날이었다. 지난 2005년 시작돼 올해로 11회째를 맞이한 웰크론그룹의 야간 행군은 기초체력증진, 팀워크강화는 물론, 고난 극복을 통해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목표달성의 성취감을 고취하기 위한 취지로 기획됐다.
이번 행군에는 4개 가족사 400여명의 임직원들이 참여한 가운데 구로동 본사를 출발해 반환지점인 양화대교를 돌아 다시 본사로 복귀하는 30Km, 총 8시간 코스로 진행됐다.
이 회장에게 힘들지 않느냐고 묻자 "예전에는 40km 행군도 했었다"며 이 정도로는 끄떡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래도 명색이 그룹의 수장인데 굳이 힘든 행군을, 그것도 선두에서 이끌어야하냐고 반문하자 그는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먼저 솔선수범해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이 회장은 "서로 다른 사업내용과 기업문화를 가진 가족사가 늘어나면서 물리적인 결합뿐 만 아니라 웰크론그룹의 기업문화, 경영철학을 공유하는 화학적인 결합이 필요했다"고 야간 행군을 시작하게 된 이유를 털어놨다. 그래서 직원들이 함께 어려움을 극복하며 동료애를 키우고,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행군을 시작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이 회장은 대표적인 자수성가형 최고경영자(CEO)로 유명하다. 섬유공학과를 나와 관련 분야의 기업에 취업해 평범한 샐러리맨 생활을 하다 어느 날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나와 자신의 회사(은성코퍼레이션)를 차렸다. 그때가 1992년. 모친의 반대를 무릅쓰고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2000만원을 빌렸다. 첫 사업 시작은 당시 국내에는 낯선 분야였던 '극세사(極細絲)'였다.
그는 "어린 시절 부친께서 공장을 운영하셨는데, 저 또한 회사를 이끌어가겠다는 꿈을 항상 갖고 있었다"면서 "한양대학교에서 섬유공학을 전공하고, 섬유관련 대기업에 입사해 극세사 개발파트에 근무하며 극세사와 인연을 맺게 됐다"고 했다. 이어 "그러던 중 우연히 일본의 섬유전시회를 참관하게 됐는데, 그동안 의류용으로만 사용되던 극세사를 안경닦이용으로 개발한 것을 보게 됐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비의류용 극세사의 부가가치에 눈을 뜨게 됐고, 이를 통해 꿈 꿔왔던 사업에 도전하게 됐다는 얘기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극세사 청소용품을 내놨지만 사업은 녹록지 않았다고 했다. 시작 4개월 만에 매출 부진에다 거래업체 부도까지 겹쳐 자금이 바닥났다. 아내는 생활비를 벌려고 보험설계사로 나서는 등 힘겨운 생활이 계속 되자 사업을 접을 지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지인의 도움으로 독일에서 첫 해외 오더를 받게 됐고 이를 성공시키면서 점차 회사의 기술력과 명성이 알려지게 됐다.
결국 웰크론의 극세사 클리너는 세계 시장 점유율 1위에 올랐다.
해외 성공을 토대로 국내 시장에 진출했다. 세계 일류 상품으로 선정된 극세사 청소용품에 더해 목욕용품, 집먼지진드기의 서식과 이동을 차단하는 침구 등으로 제품군을 확대했다. 2001년 '세사(SESA)' 브랜드로 백화점에 입점한 뒤 대리점 사업에도 나섰다.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시너지 효과가 예상되는 기술력 있는 제조업체를 인수합병(M&A)한다는 원칙에 따라 2007년 예지미인, 2010년 한텍엔지니어링, 강원비앤이를 인수했다. 현재 웰크론은 5곳의 회사로 이뤄진 매출 2000억원대의 중견 그룹으로 성장했다.
이 회장은 또 다른 꿈을 꾸고 있다. 7년도 채 안 남은 2022년까지 그룹을 매출 2조원 대의 기업으로 성장시킨다는 목표다.
이 회장은 "물, 환경, 건강, 에너지를 그룹의 성장동력으로 삼고 2022년 2조원 매출달성, 영업이익 2천억원, 시가총액 2조원 달성을 목표로 각사별로 중장기 발전전략을 수립해 놨다"고 말했다.
웰크론과 웰크론헬스케어는 자체 기술력을 토대로 구축한 브랜드를 기반으로 국내 시장을 넘어 세계무대로 유통사업을 확장하고 웰크론강원과 웰크론한텍은 발전 사업을 신수종사업으로 삼아 사업을 다각화한다는 계획이다.
목표 달성을 위해 M&A도 고려하고 있다. 이 회장은 "보통 기술을 중심으로 성장한 중소기업의 경우 초기엔 기술력을 바탕으로 빠르게 성장하지만 마케팅과, 영업, 경영 등의 노하우 부족으로 성장의 한계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 때문에 웰크론이 보유하고 있는 섬유기술을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분야를 모색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기업을 인수해왔고 앞으로도 요건만 맞는다면 M&A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59년생으로 이순에 가까와지고 있는 이 회장에게 언제까지 야간 행군에 동참하실 건지에 대해 물었다.
이 회장은 "기업을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인데 70살이 될 때까지는 해야 하지 않겠냐"며 웃었다.
지금도 아무리 바쁘더라도 새벽 4시에는 일어나 운동부터 한다는 그에게선 아직도 창업 당시의 패기를 고스란히 간직한 청년 CEO의 열정이 느껴졌다.
조강욱 기자 jomaro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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