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
"증인, 롯데가 한국 기업입니까 일본 기업입니까."
"예, 롯데는 분명한 한국 기업입니다. 저희는…."
"아 증인, 시간이 없으니 그건 됐구요. 아버지, 형제 관계가 도대체 어때요?"
"예, 그건 가족 문제라서…."
오는 17일 오후 국회 정무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정무위 위원 간의 질의응답을 가상으로 꾸며본 내용이다.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의 당사자인 신 회장은 10일 국회 정무위의 공정위 국감에 증인으로 채택되자 곧바로 출석 의사를 밝히고 이날 출석했다.
신 회장은 일주일간 그룹 정책본부를 중심으로 국감에 대비했다.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며 사과하고 그룹 지배구조와 그룹문화를 개선하고 국가경제에 기여하는 사회적 책임도 다하겠다는 내용을 준비했다.
서투른 한국말을 보완하는 데에도 노력했다. 하지만 일반증인이 출석하는 오후 국감은 신 회장의 의지와 다르게 돌아간다. 정무위는 24명(위원장 포함)으로 1인에 할당된 질의시간은 길어야 15분이다. 상세한 답변을 들을 시간이 없다.
롯데그룹 사태에 대한 높은 국민적 관심사를 대변하듯 여야 의원 가릴 것 없이 신 회장을 향한 집중포화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정책감사라는 국감의 본질을 벗어나 개인과 가족의 신상문제까지 들춰낼 수도 있다. 더구나 내년 총선을 앞둔 마지막 국감이라는 점에서 '한 방'을 기대하는 의원일수록 도를 넘은 질의도 예상된다. 신 회장이 할수 있는 말은 "예" 아니면 "아닙니다" 또는 짧은 답변에 불과하다.
이날 정무위 국감에서는 신 회장 외에도 황각규 롯데그룹 사장, 이원구 남양유업 대표이사, 주진형 한화투자증권 대표이사, 윤영찬 네이버 이사와 이병선 다음카카오 이사도 증인으로 출석한다. 정무위의 오는 14일 금융위원회 국감에서는 론스타 사건과 관련해 김한조 전 외환은행장이 증인으로 출석한다.
삼성물산ㆍ제일모직 합병 등 회사합병 관련 증인으로 홍완선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 최치훈 삼성물산 대표, 조대식 SK주식회사 대표도 참석한다. 15일 금융감독원 국감에는 주인종 전 신한은행 여신심사그룹 부행장, 김동회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전무가 경남기업 관련 증인으로, 조현준 효성 사장이 지배구조 투명성 관련 증인으로 채택됐다.
해당 기업으로선 정상적인 경영이 어렵다. 재계 관계자는 "국감 시즌만 되면 대기업을 겨냥한 보도자료가 하루에도 수백여 개가 쏟아지면 국감장에서 기업인 증인을 불러다 면박 주고 호통치는 일이 일상화되면서 정상정인 기업활동을 하지 못하게 된다"면서 "오죽하면 '국감노이로제'라는 말이 나오겠는가"라고 말했다. 대기업 임원은 "일부 지역구 의원은 지역에 사업장을 둔 대기업을 연일 비판하면서 뒤로는 각종 청탁이나 후원 등을 요구하는 일도 있다"고 전했다.
기업인 증인은 2011년 78명에 불과했지만 2012년 114명으로 늘더니 경제민주화 바람이 분 2013년 150명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여론의 질타에 기업인을 증인 대신 참고인으로 불러 지난해는 131명으로 줄었다. 올해 국감대상기관이 역대 최대인 데다 국감이 기업감사, 기업인감사로 변질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을 정도여서 기업인 출석 규모는 사상 최대로 예상된다.
국감 시즌 때마다 야당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등 재벌 총수들의 증인 채택을 요구하는 것은 성과주의가 한 원인이고 이들을 다른 증인 채택을 위한 협상용으로 활용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국회 일부에서 증인 신청 실명제를 도입하거나 기업인 등에 대한 마구잡이식 증인·참고인 소환을 방지하자는 논의가 나오고 있지만 본격적으로 공론화되지는 않고 있다.
이경호 기자 gung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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