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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의 즐거움]내게 도덕경은 무엇이었는가

시계아이콘읽는 시간55초

스무 살에도 읽었고 마흔 살에도 읽었고 지금도 읽는다. 이 책은 뭔가를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껏 말해진 무엇인가를 깨려고 하는 것 같다. 도덕경에서 무엇인가를 찾아내겠다고, 행간을 수색하며 불을 켜던 눈들은 모두 무위로 돌아간 것 같다.


도덕경에는 도덕이 없다. 도덕을 찾아나섰던 많은 이들은 도경과 덕경이 합쳐져 생겨난 이름인 것을 알고 황당해 한다. 도와 덕을 합친다고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도덕이 되는 것도 아니다. 10년 전에 낸 졸저 <옛공부의 즐거움>에는 '도덕경 비밀클럽'이란 글이 들어있다. 도덕경의 많은 구절들이 이 땅의 지식인들과 예술가의 언어와 사념 속에 얼마나 깊숙이 스며들었는가를 좌충우돌로 분석한 가벼운 글이다. 옛글을 안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지를 입증하려고 나름으로 용을 쓰며 풀어낸 것인데 졸렬함을 면치 못한 우스개일 뿐이다. 도덕경이 수많은 지식인들의 변주를 거쳐 우리 마음의 일부, 우리 견해의 일부가 돼있다는 통찰은 여전히 유효하다. 우린 도덕경의 행간 속에서 살고 있으며 도덕경의 관점의 끝을 잡고 여전히 고민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몇 권의 도덕경 중에서 오강남 선생이 펴낸 현암사 도덕경을 너덜너덜해진 상태로 자주 읽는데, 그 머리말엔 잊지 못할 얘기가 몇 개 있다. 1980년에 돌아가신 서울대 영문과 교수이자 시인인 송욱은 작고 직전에 신문과 인터뷰를 했는데, 자신의 수천 권의 장서 중에서 딱 한 권만 꼽으라면 도덕경의 주석을 모은 책인 '노자익'을 택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지성과 감수성으로 한 시대를 아로새긴 그가 다른 책을 다 버리고 이것 한 권만을 택한 건 어떤 의미였을까. 이 책이 숨긴 무한한 영감의 원천을 그가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모든 지식을 버리고, 모든 수식어를 버리고, 모든 삶의 너울들을 버리고 난 뒤, 이윽고 찾아 나선 모태의 자리 같은 것이라고 나는 믿어왔다. 이 책은 모든 책들의 고향이며 모든 사유들의 시작이며 모든 꿈들이 피어나는 계곡 같은 것이다.


임어당도 동양의 글 중에서 이 책을 가장 먼저 읽어야 한다고 말했고, 도덕경을 영문으로 번역한 진영첩은 "도덕경이 없었다면 중국인의 성격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나는 더 나이 들어서도 이 책을 읽고 있음에 틀림없겠지만, 이 즈음에 한번 내 방식대로 노자라는 분과 미팅을 좀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 않으면 그냥 지나친 사람만 될 거 같아, 섭섭한 기분이 들까 싶어 저지르는 우행이다. 읽으며 더 캄캄해지는 독서를 한 번 더 나아가 보리라.


빈섬 이상국(편집부장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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