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판 삼포세대…3명중 1명 부모와 거주…결혼·출산·주택구매 미뤄
[아시아경제 조목인 기자]#뉴욕에 살고 있는 직장인 줄리아 한델(27)은 현재 마케팅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올해로 3년차, 연봉은 4만달러다. 대학교 동창들과 비교하면 괜찮은 보수다. 한델은 오래 사귄 남자친구가 있지만 빚을 갚느라 결혼은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대학 졸업 후 열심히 학자금 대출을 갚았지만 여전히 7만5000달러가 더 남았다. 원금과 이자를 다 갚는데 10년 정도 걸릴 것 같다. 40세가 다 돼서야 결혼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 막막하다.
#뉴욕의 한 치과대학에 재학중인 크리스 렁(23)은 최근 학교 근처의 원룸에서 나와 한시간 반 거리의 부모님 집으로 들어갔다. 내년에 졸업할 예정인데 졸업과 함께 4만달러에 달하는 학자금 대출을 갚기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렁은 졸업을 미루고 군입대를 하거나 뉴욕을 떠나 텍사스처럼 소득세가 없는 주로 이사갈 지 여부를 진지하게 고민중이다.
소비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는 밀레니엄 세대의 이면에는 경제적인 슬픔이 자리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대학 졸업장을 받는 동시에 심각한 취업난과 학자금 대출 상환이라는 과제를 떠안게 안게 된다.
뉴욕연방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3월말 기준 미국의 학자금 대출 잔액은 1조2000억달러를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780억달러)을 크게 웃돈다. 90일 이상 상환이 연체되거나 디폴트(지급불능)에 빠진 비율은 11%에 달한다. 2013년까지 10년동안 미국의 학자금 대출 규모는 300% 늘었고 지난해에도 10% 증가했다. 이는 같은 기간 미국인들의 평균 부채가 43%, 1.6% 늘어난 것과 대비된다.
채무를 갚으려면 취업을 해야 하지만 고용 사정이 나아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미국의 실업률은 완전 고용 수준에 이르렀지만 임금 상승세가 매우 더딘데다 젊은층 고용의 질은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
밀레니엄 세대들 가운데 부모와 함께 사는 '캥거루족'이 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현재 밀레니엄 세대 3명 중 1명꼴로 부모와 함께 거주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금융위기 당시보다 높은 비율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대학을 졸업했거나 아직 대학에 재학중인 미국의 밀레니엄 세대는 취업, 결혼, 출산을 포기한 한국의 '삼포세대'와 비슷한 점이 많다.
시장조사업체 뱅크레이트닷컴의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학자금 대출 등 경제적인 이유로 결혼을 미뤘다고 답한 밀레니엄 세대는 19%로 전체 성인 평균(9%)보다 10%포인트 높았다. 결혼은 했지만 자녀 갖는 것을 미루고 있다는 응답은 14%로 평균을 4%포인트 웃돌았다. 20%는 돈 때문에 연애를 못하고 있다고 답했고 30%는 집·자동차 구매를 미루고 있다고 밝혔다.
뱅크레이트닷컴의 스티브 파운즈 애널리스트는 "밀레니엄 세대가 경제적인 이유로 결혼, 출산, 주택 구매와 같은 인생의 중대한 일들을 미루고 있다는 것은 한 개인이나 가족의 비극으로 끝나지 않는다"면서 "이는 미국의 경제회복에도 해가 된다"고 말했다.
조목인 기자 cmi0724@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