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결단', '부당거래' 등 이어 다섯 번째 경찰역
"캐릭터는 단조로워도 통쾌한 맛 있죠"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스타 위주로 제작되는 '스타 시스템'은 영화산업의 발전을 저해한다. 기획이 좋아도 스타를 잡지 못해 무산되는 영화가 생긴다. 이미 만들어진 스타의 이미지를 소비하려고 그들에게 시나리오가 집중돼 배우 기근의 악순환도 발생한다. 스타도 정형화된 연기와 과도한 이미지 소비로 가치가 급락할 수 있다. 출연한 작품이 흥행에 성공한 다음 밀려드는 방송 출연, 광고 촬영 등의 제안을 얼마나 잘 조절하느냐가 중요하다.
지난 5일 개봉한 '베테랑'은 '스타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영화다. 류승완(42) 감독은 "황정민(45)에게 출연을 먼저 약속받고 시나리오를 완성했다"고 했다. 황정민은 류 감독의 전작 '부당거래(2010)'에서 광역수사대 에이스 최철기를 연기했다. '베테랑'에서 맡은 서도철은 그와 성격만 다른 붕어빵이다. 유해진(45), 정만식(41), 천호진(55), 김민재(36), 안길강(49), 마동석(44) 등의 재합류로 속편 냄새까지 난다.
'베테랑'은 통쾌한 맛이 있지만 진일보하지 못했다. '신세계(2012)'의 박훈정(41) 감독이 각본을 맡은 '부당거래'에 비해 캐릭터가 단조롭고 시퀀스간의 연결고리가 약하다. 황정민은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후졌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이런 약점과 이미지 소비를 인지하고도 출연을 결심한 이유는 촬영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였다. "'부당거래'를 찍으면서 류 감독을 비롯해 좋은 동료를 많이 사귀었다. 그들과 다시 작품을 만든다는 생각에 흥분됐다."
30대의 황정민에게선 기대할 수 없던 일이다. 그는 강박관념이 심했다. 연기를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옥죄고 압박했다. 황정민은 "30대였다면 '베테랑'을 찍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40대를 맞으면서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선은 한결 편해졌다. "'이렇게 매달린다고 얼마나 더 잘하겠어'라고 거듭 반문하니 마음이 편해지고 연기를 즐기면서 할 수 있게 됐다. 부모님을 촬영장에 초대할 정도다."
부담을 내려놓아도 이미지 소비에 대한 우려는 있다. 근래 '남자가 사랑할 때(2013)', '전설의 주먹(2012)', '신세계', '부당거래' 등에서 마초에 가까운 연기를 했다. 특히 형사는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2005)', '사생결단(2006)' 등에 이어 이번이 다섯 번째다. 하지만 그는 “모든 캐릭터가 같을 수 없다”고 했다. "'베테랑'과 '공공의 적2'는 성격은 비슷하지만 다른 영화다. 캐릭터에게도 고유의 색깔이 있어 역할이 중복돼도 두렵지 않다. 단 연기를 할 때 스스로를 속이지 말자고 다짐한다."
까다롭지 않은 시나리오 선별 기준에 황정민은 2001년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주연으로 영화에 데뷔한 이래 TV 드라마 등 다양한 영역에서 마흔한 작품에 참여했다. 류 감독은 "진지하면서도 유쾌한 자세가 '베테랑' 속 서도철과 많이 닮았다"고 했다. 황정민은 "그런 이유 때문인지 '부당거래'의 최철기에 비해 캐릭터를 표현하기가 쉬웠다.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의 악행을 심판하는 정의로운 자로 관객의 응원까지 등에 업는데 섭외 제안을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고 했다.
류 감독은 "시나리오에 나오지 않는 캐릭터의 디테일을 스스로 찾아 표현해줬다. 단조로울 수 있는 이야기가 풍성해졌다"고 했다. 형사 연기는 '베테랑' 뒤에도 계속될 수 있다. 영화가 시리즈로 발전할 여지를 남겼다. 황정민은 "한가로울 때 '에일리언' 시리즈를 연달아 시청하는데 '이 영화와 내가 세월을 함께 했구나'라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진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게 그런 시리즈가 생긴다면 더 없이 큰 영광일 것"이라고 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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