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소연 기자]28일 밤 10시10분 김포국제공항.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장녀인 신영자 롯데복지재단 이사장과 몇몇 일행을 대동해 공항 입국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휠체어에 몸을 기댄채 수행원의 도움을 받아 공항을 빠져나온 그는 한 눈에 봐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어두운 낯빛에 멍한 눈빛은 허공에 고정돼 있었다. 신 총괄회장의 등장을 기다리던 취재진이 한꺼번에 몰려 아수라장이 되면서 이리저리 밀쳐졌지만 표정에는 일체의 미동이 없었다. 질문을 던지는 취재진을 가끔 멍하니 응시하기만 했다.
그의 곁에는 신영자 이사장 뿐이었다. 이번 '형제의 난'을 주도한 두 형제는 없었다. 취재진과 경호원이 뒤엉켜 그를 밀칠 때 신 이사장은 이들을 직접 떼어놓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힘으로 되지 않자 주변 직원들에게 "우리 아버지 어떡해! 어떻게 좀 해봐."라며 호소했다.
신 총괄회장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지만 쇠한 기력, 텅빈 눈빛 등은 그가 얼마나 두 아들 사이에서 번뇌하며 지쳐있을지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세계대전 패전 직후의 일본에서 껌,초콜릿 등을 팔다가 1967년 자본금 3000만원의 롯데제과를 설립한 것을 시작으로 그는 50여년간 모든 사업을 직접 돌보며 현재의 롯데를 일궈왔다. 그러나 후계구도를 둘러싸고 두 아들 간 다툼이 빚어지면서 그는 사실상 '종이호랑이'로 전락하게 됐다. 차남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롯데그룹 전체 후계자로 삼았다가 일주일여만에 장자인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회장 편에 서면서 정작 그는 자신이 후계자로 세웠던 차남에게 내쳐진 모양새가 됐다. 그 역시 과거 동생인 신철호 전 롯데 사장, 농심그룹 신춘호 회장과 경영권 분쟁을 겪으며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던 경험이 있다. 이번 분란으로 권력이 무엇일지, 형제의 우애가 무엇일지 많은 회한이 들 터다.
롯데그룹 측은 이번 사건은 일본에 한정된 일로, 한국 롯데에서도 신격호 총괄회장이 퇴임할 가능성은 낮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아직 경영권 분쟁 불씨가 남은 만큼 앞으로의 일을 장담하기는 어렵다.
신 총괄회장을 취재하는 동안 아버지를 걱정하는 아들 신 회장의 멘트가 오버랩됐다. "아버지 건강이 걱정되는 상황인데 무리한 일정을 소화해 안타깝다"며 "이번 일로 고령의 아버지에게 큰 부담이 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 무리한 일정도 문제지만 경영권을 둘러싼 형제간 갈등이 아버지에게는 더 부담이지 않을까.
김소연 기자 nicks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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