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대섭 기자] 최근 만난 A보험회사의 한 임원은 요즘 재무설계사(FC)들을 만나기가 미안하다고 말했다. 국내 보험시장의 포화상태와 저성장 장기화 등 FC들의 영업환경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상황이지만 상품 판매 실적에 대한 얘기를 안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과거에는 밝고 활기찼지만 지금은 어둡고 우울해진 지점 분위기를 보면서 마음이 더 무겁다고 설명했다.
보험사 FC는 영업 현장 일선에서 고객들을 만나는 사람들이다. 고객과의 접점에서 보험 상품을 판매한다. 인터넷 기술이 발달하면서 비대면 영업 시장이 성장하고 있지만 대면 영업 시장은 아직도 보험사의 수익구조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 FC의 영업환경이 어려워지면 보험사의 경영과 생존에도 문제가 생긴다는 얘기다.
B보험사 임원은 지점 통폐합 문제 때문에 고민이 커졌다. 이 회사의 수도권 지점 중 한 곳은 FC 30여명 규모의 중형 점포였지만 지난달에 설계사 수가 절반 가량으로 줄었다. 지점 실적의 절반 이상을 챙기고 있는 FC 12명이 독립법인대리점(GA)으로 이탈했기 때문이다. 이 임원은 지점의 통폐합은 물론 남은 설계사들의 영업활동을 어떻게 지원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FC들도 고민이 커지긴 마찬가지다. C보험사에서 6년째 활동 중인 한 FC는 급격하게 달라진 영업 환경과 분위기에 기운이 빠진다고 말했다. 3~4년 전만해도 억대 연봉을 받는 FC들도 많고 지점 분위기도 좋아 회식자리 등에서 선배들의 무용담을 들으면서 본인도 꼭 성공하겠다는 꿈을 키웠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영업 채널이 다양해지면서 실적도 예전 같지 않고 경기 침체로 보험을 가입하려는 고객을 찾기도 어렵다. 특히 최근 몇 달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ㆍ메르스) 영향으로 고객들을 만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지면서 생계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최근 금융당국은 보험사의 복합점포 입점에 대한 추진방안을 발표 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올해 8월부터 2017년 6월까지 금융지주회사별로 3개 이내의 복합점포를 시범적으로 운영한다.
보험사 지점이 은행ㆍ증권 복합점포 내부에 별도공간을 마련해 입점하는 형태다. 복합점포 도입은 금융권 칸막이 완화를 통한 경쟁과 융합을 촉진시킬 수 있다. 또 종합금융서비스 제공은 물론 소비자 선택권을 높이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긍정적인 효과 뿐만 아니라 다양한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특히 복합점포를 찾은 고객에게 금융지주사 계열 보험사 소속인 별도의 FC를 소개해 점포 외부에서 상품판매를 알선하는 행위 등이 나타날 수 있다.
방카슈랑스(이하 방카) 규제를 우회해 회피하는 행태로 방카 25% 룰이 유명무실해진다는 얘기다. 방카 25% 룰은 은행에서 판매하는 특정 보험사 상품 비중이 25%를 넘을 수 없도록 한 보험업법상 규정이다.
이런 부작용이 실제로 발생할 경우 전업계 보험사 FC들에게는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FC들의 영업환경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사기도 떨어진 상황에서 일자리를 잃고 생계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
금융당국은 복합점포 도입에 대해 현행 법규내에서 제한적ㆍ시범적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보험사 지점이 입점한 복합점포에 대해 방카규제 우회 행태 등을 중점적으로 상시 점검할 방침이다.
그러나 방카 규제 우회 행태 등에 대해 엄중하게 제재하기 위한 후속조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보험업계의 목소리도 크다. 금융당국은 이러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소통을 통해 보험업계가 만족할 만한 후속조치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FC들이 피해를 입거나 설 자리가 없어지면 그 부정적인 여파가 보험산업과 보험가입 고객들에게 갈 수밖에 없다.
김대섭 기자 joas1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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