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신범수 기자] 대통령 선거에서 특정 후보의 공약과 비전 전부가 마음에 들어 표를 던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수많은 약속 중에 한두 가지가 귀에 들어왔거나 단지 상대편보다 덜 싫다는 이유로 대한민국의 5년을 맡긴다. 이렇게 차선 또는 차악을 선택하는 어정쩡한 투표행위는 드물지 않은데, 그런 상황을 개선할 수만 있다면 유권자 권리는 더욱 보장될 것이다.
그래서 나의 이익ㆍ가치를 충실히 반영하는 맞춤형 후보가 다양하게 등장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래야 후보들도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을 숨기려는 유인을 갖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당선 가시권에 있는 후보가 단 두 명뿐인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우리는 매번 비슷한 난처함에 빠진다.
집권당이 이른바 친박계 그리고 그들과는 갈 길이 너무나 달라 보이는 편으로 나뉘어 내분을 겪고 있다. 친박계 중심에는 당연히 박근혜 대통령이, 상대편에는 유승민 원내대표가 있다. 이것은 계파 간 권력다툼으로 치부되지만 지나치게 스펙트럼이 넓은 거대 정당에서 불가피하게 생기는 상이한 정치 노선의 충돌이기도 하다.
지난 대선에서 박 대통령의 진보적 공약에 표를 던진 국민이 상당수일 텐데, 잘 지켜지지 않고 있는 그 공약들은 사실 박 대통령보다는 유 대표 쪽 인사들이 내세울 만한 것들이었다. 이제 와 박 대통령이 유 대표를 당에서 몰아내려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그래서 매우 당황스럽다.
박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한 단체가 "유승민은 새정치민주연합으로 가라"고 요구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유 대표가 견지한 노선은, 특히 지난 4월 교섭단체 연설에서 잘 드러난, 세금을 올리고 복지를 확대하려 한다는 점에서 진보적 색채가 강하다. 그래서 노선을 달리하는 집단으로서 양 계파는 각자 의미 있는 집합체가 될 수 있다.
동시에 달성되기 어려운 가치의 동거를 끝내는 것은 각 정치인들이 자신의 색깔을 분명히 드러냄으로써 유권자를 현혹시킬 필요를 제거하는 일이다.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곳에서 본색을 드러냈다가 곤욕을 치르는 위험도 줄어든다. 4ㆍ19와 5ㆍ18을 폭동이라 생각한다면 그런 뜻을 가진 사람들끼리 당을 만들어 떳떳이 활동하면 된다. 전(前) 대통령 묘소를 억지로 찾아 눈 감고 다른 생각을 하거나, 사실 과격한 사회민주주의 체질이면서 반시장주의자 혹은 종북이란 말을 들을까봐 아닌 척할 필요도 없다.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가치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섞여있고 시민들은 자신의 이익과 윤리적 판단을 기준으로 정당을 선택할 수 있으며 또 그럴 수 있게 교육받아야 한다. 세상은 복잡하고 보수 정치인들의 철학도 세분화돼 있는데 이를 하나의 정당이란 테두리안에 묶어놓으려다보니 대통령이 원내대표에게 눈을 흘기고 국회의장이 청와대 행사에서 배제되며 집권당 회의장에 욕설이 난무하는 막장 드라마가 펼쳐지는 것이다.
회식장소로 홍대앞을 원하는 사람들끼리 삼겹살을 먹을지 해물탕을 먹을지 토론하고 설득하는 건 가능하다. 그러나 홍대와 신촌으로 희망 장소가 다른데 메뉴를 논해봐야 아무런 결론을 낼 수 없다. 차라리 홍대파와 신촌파로 나눠 회식을 따로 하는 것이 모두의 만족을 극대화하는 최선의 방법일 수 있다.
신범수 기자 answ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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