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호흡기증후군(MERSㆍ메르스) 확산으로 국민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지난해 12월 수정한 '감염병 위기관리 표준 매뉴얼'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매뉴얼을 만들어 놓고도 주먹구구식으로 대응해 문제를 키웠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가 작성한 약 80페이지 분량의 '감염병 위기관리 표준 매뉴얼'을 보면 우선 정부가 이번 메르스 사태와 관련해 위기 경보 수준을 지키지 않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정부는 '관심-주의-경계-심각'의 4단계에서 '주의' 단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해외 신종감염병의 국내 유입에 해당하는 단계며, 다음의 '경계'는 해외 신종감염병이 국내 유입 후 타 지역으로 전파될 때 발령된다.
이미 메르스가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위기 경보 수준을 경계로 올려야 했지만 매뉴얼을 따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청정 지역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 상황을 고려해 '해외 신종감염병의 전국적 확산 징후'에 해당하는 '심각' 단계로 격상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심각은 위기경보의 마지막 단계다. 하지만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8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위기 경보 수준을 경계로 올리는 것에 대해 "필요시 언제든지 경계 단계로 격상하겠다"면서도 "국가 이미지 (때문에)" 현 상태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또 매뉴얼을 더 살펴보면 '관심' 단계부터 제대로 대응이 이뤄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관심'은 해외의 신종감염병 발생에 해당하고 매뉴얼은 이 단계부터 감염병 발생 원인에 대한 신속한 역학조사를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2012년 9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메르스가 처음 발생했을 때 국내 유입을 대비해 조사가 이뤄졌어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정부의 사전 조사는 국내에서 메르스 환자가 나온 뒤 '익히지 않은 낙타고기와 낙타유를 섭취하지 말라'는 내용을 예방수칙이라고 내놓는 수준이었다. 또 이 단계에서는 감염병 예방에 대한 대국민 홍보를 하게 규정돼 있지만 이 역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게다가 예비비 편성과 지원은 주의 단계부터 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정부는 주의가 발령된 지 한참 뒤인 16일 505억원을 예비비로 지출하기로 결정했다.
정부가 매뉴얼과 정반대로 한 일도 있다. 초기에 감염이 발생한 병원과 지역에 대해 비공개를 고집한 것이다. 매뉴얼은 주의 단계에서 '정확하고 신속한 정보 제공을 통해 불필요한 불안감을 해소'하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매뉴얼에 별도로 부록으로 수록된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매뉴얼'도 지켜지지 않았다. 여기에는 '정부가 위기 시에 정확하고 시의적절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효율적인 구조 활동을 지원하며 피해자를 배려하는 한편 위기관리 대응에 관한 정부의 신뢰를 확보한다'고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 달 20일 첫 환자가 발생한 지 18일 만에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병원들을 공개해 시의적절하게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고 정부의 신뢰를 확보하는 데도 실패했다. 또 '피해자 등 국민 정서를 항상 염두에 두고 발언, 행동하라'고 규정해놓고도 국민들의 불안감 확산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언론에 적극적으로 새로운 정보를 제공할 것'이라고 했지만 이 역시 지켜지지 않았다.
온라인이슈팀 issu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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