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술 영역에서 경쟁력 약화가 우려된다. 고령화로 과학기술 인재가 부족해질 것이다. 정부의 연구개발 정책과 사업은 부처별로 파편화되어 비효율적이다. 국내 중소기업의 혁신 의지가 약화되고 있다. 국내 연구 환경은 우수한 글로벌 인재들에게 매력적이지 못하다. 연구와 혁신 사이에 연계가 부족하다.'
이 문제들은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 독일 정부가 자국의 연구개발 시스템을 진단한 결과다. 당시 우리나라 정부도 같은 문제를 고민하고 있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나라와 독일에서는 거의 동시에 연구개발 혁신이 추진되었다. 노무현 정부는 과학기술혁신본부라는 획기적인 정부 조직을 만들었다. 독일 메르켈 정부는 정부조직 개편 없이 '첨단기술전략'이라는 새로운 정책을 시도했다. 이후 10년 동안 우리나라와 독일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가 중에서 다른 어느 나라보다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를 늘려왔다.
그 결과는 어떠한가? 외형상 우리나라와 독일의 과학기술은 모두 글로벌 경쟁에서 선도적이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의 자료를 보면 과학기술 인프라 면에서 독일과 우리나라는 최근 몇 년 동안 모두 세계 10위권을 유지했다. 과학기술의 주요 산출물인 논문과 특허 수에서는, 독일이 다소 앞서긴 해도 한국은 세계 순위에서 가파른 상승을 기록해 왔다.
하지만 양국의 국내 사정은 조금 다르다. 우리나라에서 부총리급의 과학기술부와 혁신본부는 2008년 해체되었다. 이명박 정부가 시도한 교육과 과학기술 행정부의 통합은 짧은 실험으로 끝났다. 그 사이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의 설립과 해체가 있었다. 부처 변화의 과정에서 과학기술계 연구회 체계도 수차례 바뀌었다. 박근혜정부는 미래창조과학부를 설립했다. 이어 정부는 지난 13일 미래부 내에 이른바 '과학기술전략본부'를 만들고 산하에 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과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을 통합해 과학기술정책원을 만들겠다는 연구개발 혁신안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10년 전 제기된 문제들이 고스란히 새로운 혁신안에 재등장한다.
우리나라의 재반복, 재탕에 비해 독일의 과학기술 개혁은 성공적이라고 평가된다. 개혁의 목표는 2006년 국내 시스템 개혁에서, 2010년 유럽에서의 리더십 확보, 2014년 글로벌 리더십의 획득으로 상향되었다. 독일의 전략은 과학기술 시스템의 최적화를 위해 구성되며, 더 이상 과거의 문제들에 머물지 않는다.
무엇이 차이를 만들었을까? 독일은 과학기술 분야 간 장벽, 부처 간 칸막이, 연구 주체 간 비협력, 연구계와 산업계의 비연계를 허무는 프로그램에 집중했다. 독일 정부는 연구캠퍼스, 최첨단 클러스터 등 다양한 산학연 협력 플랫폼을 개발하고 제공했다. 개혁에 대한 과학기술계의 신뢰와 참여를 확보하기 위해 수직, 수평의 대화 채널을 열었다. 독일 대학의 탁월한 연구와 주니어 과학자 양성을 지원하는 재정 협약, 공공연구기관의 연구비 사용과 인력 고용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학문자유법 제정이 이루어졌다. 한마디로 독일 과학기술 시스템의 개혁은 정부의 목표와 과학기술계의 목표를 합치시키기 위한 전략과 협상, 투자의 결과다.
우리나라는 지난 10년 동안 늘어난 연구개발 예산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의 문제에만 집중해 온 게 사실이다. BK 21, 국가연구개발 사업 등 과거의 프로그램들은 명칭만 바뀐 채 지속되고 있으며 새로운 프로그램은 시스템 개혁에 미치는 영향력이 미미하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 정부가 발표한 연구개발 혁신안에 대해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것이다. 새로운 혁신안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것이 지금보다 더 나은 '차이'를 만들어 낼 것이라는 전망이 이해당사자들 사이에서 공유되어야 할 것이다.
홍성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