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상승 제한·부의 불평등 심화·기업 성장성 침해' 등 부작용 지적 잇따라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미국 S&P500 기업들이 지난해 자사주 매입과 배당을 통해 주주들에게 돌려준 자금은 사상 최대인 9400억달러를 기록했다. 팩트셋 리서치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주주환원 규모는 연간 순이익의 90%가 넘는다.
최근 미국에서는 이같은 대규모 주주환원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고 미국 온라인 경제매체 마켓워치가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대규모 주주환원이 임금 상승을 저해할 뿐 아니라 부의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기업의 장기 성장성을 잠식한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는 것이다. 특히 미국 경기 회복에도 불구하고 임금이 오르지 않는 것은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가 공개적으로 우려를 나타내고 있는 큰 고민거리 중 하나여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매사추세츠 주립대 로웰 캠퍼스의 윌리엄 라조닉 교수는 마켓워치와 인터뷰에서 대규모 자사주 매입이 임금 상승을 저해하는 요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라조닉 교수는 미국 대기업들이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자사주 매입에 2조달러가 넘는 자금을 투입했다며 그만큼 임금 상승이나 혁신을 위한 투자, 신규 일자리 창출에 돈이 투자되지 않은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경영진들의 보수를 주식으로 보상해주는 사례가 늘면서 주주환원 규모가 커지고 있다며 경영진에게 주식으로 보상하는 것을 불법화시켜야 한다고까지 주장했다.
라조닉 교수는 대규모 자사주 매입으로 수혜를 입은 이들은 결국 주식으로 보상받은 대기업 경영진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자사주 매입은 상위 계층의 소득 집중화와 중산층의 붕괴, 고임금 일자리의 감소를 가져온다"며 "임금이 오르지 않는 이유도 고용시장과는 관련이 없고 기업들이 노동자에 투자를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뉴욕 증시가 금융위기 저점을 기록했던 2009년 3월 이후 S&P500 기업의 주당 순이익은 87%, 주당 매출은 22% 늘었다. 연 평균으로 따지면 주당 순이익 증가율이 17% 늘고 매출도 4%씩 증가했다. 금융위기를 거치며 잠시 주춤했던 주주환원은 2010년부터 가파르게 늘었고 현재 S&P500 지수는 2009년 3월에 비해 200% 이상 올랐다. 하지만 자본지출, 즉 투자 증가율과 임금 상승률은 정체돼 있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1990년대 자본지출 증가율은 15%에 육박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줄지 않으면 다행일 정도로 투자가 위축됐다. 반면 10%를 밑돌던 시가총액 대비 자사주 매입 비율은 최근 30% 안팎 수준으로 상승했다.
블랙록의 래리 핑크 최고경영자(CEO)도 지난달 14일 S&P500 기업의 경영진들에게 보낸 공개 서한에서 대규모 자사주 매입을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핑크 CEO는 "행동주의 주주들의 압력에 굴복해 기업들이 자사주 매입이나 배당을 늘린다면 기업 혁신이나 투자는 위축되고 숙련된 노동력 확보도 어려워질 것"이라며 "현재 지분을 갖고 있는 모든 주주가 아닌 장기 주주들에 성실해야 하는 것이 CEO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이같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의 주주환원은 계속 되고 있다. 비리니 어소시에이츠에 따르면 지난달 기업들의 주주환원 규모는 1410억달러로 월간 기준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골드만삭스는 올해 S&P500 기업의 자본확원 규모가 1조달러를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자사주 매입 규모는 지난해에 비해 18% 늘고, 배당 규모가 7%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라조닉 교수는 지난해 11월 하버드비즈니스리뷰 기고문에서도 대규모 주주환원을 강하게 비난했다. 당시 그는 "30년동안 혁신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쓰였던 수 조달러의 자금이 점점 더 주가 조작을 위해 사용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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