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이루지 못한 꿈, 아들이 이뤘다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이제 시작이죠. 우승도 하고 싶고 최우수선수(MVP)로도 뽑히고 싶어요.”
이승현(23ㆍ고양 오리온스)의 사전에 ‘안주’라는 말은 없다. 서울 코엑스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14일 열린 프로농구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타고 “생각보다 감격이 오래가지 않는다”며 웃었다. 채 20분도 지나기 전에 새 목표가 생겼다. 용산고 선배 양동근(34ㆍ울산 모비스)이 수상한 MVP다. “부럽더라고요. 저도 언젠가는 저 자리에 올라봐야죠.”
코트를 처음 밟았을 때부터 그는 정상을 향해 달렸다. 아버지 이용길(57) 씨와 어머니 최혜정(50) 씨가 그렇게 가르쳤다. 두 사람은 농구를 사랑했지만 선수로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아들만은 성공한 스타로 만들고 싶어 했다. 농구에 대해 잘 알았으므로 아들을 직접 지도했다. 가르치는 부모에게도 아들에게도 일정은 혹독했다.
'과외'는 주로 아버지의 몫이었다. 이용길 씨는 회사원으로 일하느라 지방 출장이 잦았지만 피곤을 아랑곳하지 않고 아들을 코트로 불러냈다. 이승현은 “화곡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따로 훈련을 받았다. 스트레칭, 러닝, 줄넘기 등으로 몸을 풀었고 피벗(한 발을 축으로 해 회전하는 동작), 슛, 골밑 수비 등으로 기본기를 다졌다”고 했다.
아버지가 코치였다면 어머니는 프런트에 가까웠다. 기전여고와 실업팀 코오롱에서 선수생활을 한 최 씨는 일하던 닭갈비 음식점을 그만두고 아들에게 매달렸다. 철저한 식단관리로 체중 감량을 유도하면서 훈련을 독촉했다. 모든 경기를 따라다니며 보완할 점도 체크했다. 그 내용은 아버지에게 전달돼 또 다른 과외로 이어졌다.
이승현은 용산중에 진학하면서 집에서도 계속되는 훈련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는 “따로 훈련을 받는 학생이 나 혼자였다. 이렇게까지 농구를 해야 하나 싶어 반항도 해봤다”고 했다. 아버지는 아들의 투정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쉬고 싶으면 쉬어야지”라며 어깨를 다독였다. 어머니는 달랐다. “독한 훈련을 이겨내야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다”며 채근했다.
이승현은 “두 분 모두 농구를 독촉했다면 많이 힘들었을 것”이라며 “숨 돌릴 틈을 주시면서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게 해주신 것이 나를 이 자리까지 이끈 것 같다”고 했다. 그는 “경기에서 움직임이 다르다는 것을 체감하면서 부모님의 고마움을 절감할 수 있었다”며 “그 뒤로 부모님에 대한 강한 믿음이 생겼다”고 했다.
프로에 진출한 뒤에도 이러한 관계에는 변함이 없다. 첫 결실이라고 할 수 있는 신인상에 아버지는 “우리 아들, 고생 많았어”라며 축하를 보냈다. 어머니는 “아직 멀었어. 스스로를 더 채찍질해야 돼”라고 했다.
이승현은 환하게 웃었다. “힘든 일정에 지칠 때도 있었지만 계속 하니까 적응이 되더라고요. 그런 것까지 즐길 줄 알아야 양동근 선배처럼 정상에 오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는 작은 바람도 잊지 않았다. “엄마, 아들 많이 컸어요. 신인상 탔다고 안주하지 않는다고요. 이젠 칭찬 좀 해주세요.”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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