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재직하는 중앙대에 백발이 성성한 노교수님이 계셨다. 그분은 자주 교정의 잔디밭에서 잡초를 뽑곤 하셨다. 지나가던 학생을 불러 세워 함께 잡초를 뽑기도 했다. 때로는 여름의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때로는 늦가을의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그 교수님은 본관 앞 잔디밭에 계셨다.
그분이 정년퇴직한 지금, 잔디밭에 학생을 불러 세워 함께 잡초를 뽑는 교수는 아무도 없다. 이 노교수님이 학생들에게 가르치려고 했던 배려, 공동체에 대한 공헌을 가르치는 교수는 없다. 이제 뒤늦게 한국 사회에서 인성을 강조하지만 정작 대학에는 인성을 가르칠 만한 교수가 없다.
그렇다고 대학이 실전능력이나 전문성을 가르치는 곳도 아니다. 한 대기업 전무가 내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파워포인트나 엑셀 같은 기본적인 업무 소프트웨어를 쓸 줄 모르는 신입사원이 태반이라 충격이었습니다." 이해가 안 돼 수업 시간에 조사해 봤더니 정말 절반이 넘는 학생이 사용한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대학 수업의 대부분이 그냥 앉아서 필기하고 암기해서 시험을 치기 때문이다.
'베리타스 룩스 메아(진리는 나의 빛)'라는 중세 대학의 존재 이유처럼 진리에 대한 깊은 천착을 가르치는 대학 역시 오래전에 사라졌다. 대학 강의실은 무엇이 옳은 것인가를 치열하게 토론하는 대신 교수가 말하는 내용을 누가 충실하게 답안지에 기입하는가가 중요하게 되었다.
1980년대 내가 대학을 다닐 때 일이다. 경영학 전공수업을 하던 중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지금 유행하는 종속이론이 무엇인지 설명해 달라'고 하셨다. 친구들에게 떠밀린 내가 간략히 그 이론을 설명하자 교수님은 "아, 이런 내용인 것 같군"이라고 해석했다. 문제는 바로 그 다음이었다. 선후배들과 세미나 하던 습관이 그냥 툭 튀어나와 버렸다. 나도 모르게 '그건 교수님이 제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네요' 라고 한 것이다. 순간 당황하신 교수님의 표정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이런 대형사고를 쳤음에도 나는 F가 아니라 B라는 성적을 받았다. 'old good times(오래 전 좋은 시절)'의 대학에서 교수들은 학생들의 진리탐구에 대한 열정을 이해해 주었다.
대학이 한국 사회 문제해결에 기여하는 것도 아니다. 한국의 대학은 특히 1970년대와 1980년대에 한국 사회의 중요한 지식 발신 거점이었다. 미국에서 생산된 지식을 가장 빨리 흡수해 사회 전반에 전파하는 역할을 했던 곳이 바로 대학이었다. 공학이건 경제학, 경영학이건 분야를 막론하고 글로벌 사회를 이끌어가는 미국의 첨단 지식을 흡수해 한국에 전파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 한국은 미국과 다른 독자적인 사회 시스템과 사회적 과제를 안고 있어 외부 지식의 흡수만으로는 한계에 직면해 있다. 예를 들어 한국 사회에서 심각하게 논란이 되고 있는 빈부격차의 증대나 청년 실업 문제는 사실 이미 선진국, 특히 2000년대 전후 유럽이나 일본에서 심각한 이슈가 되었던 사안이었다. 당시 유럽에서는 지금에야 우리가 고민하기 시작하는 '잡 셰어링(일자리 공유)'이나 파트 타이머의 정규직 대우 등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또 빈부격차나 중산층 소멸과 같은 뜨거운 이슈를 놓고서도 이들 국가의 교수들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 사회가 동일한 고통에 휘말려 있는 지금 그에 대한 대안이 한국의 대학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한국의 대학은 해외 지식의 흡수에 특화되어 있어 독자적인 지식의 생산에는 취약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학은 존재가치를 도전받고 있다. 안으로는 한국 사회에 기여하기를 요구 받고 있고 밖으로는 하버드와 MIT가 중심이 된 '에드엑스'나 스탠퍼드 대학이 중심인 '코세라' 같은 온라인 대학강의가 위협하고 있다.
지미 웨일즈 위키피디어 회장은 "앞으로 대학 교육은 급변해 글로벌 온라인대학교가 생기고 대부분 무료로 강의를 듣게 될 것이다"고 말한 바 있다. 과연 한국의 대학은 생존할 수 있을 것인가.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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