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오종탁 기자] "변호사를 100명으로 늘린다고 승소율이 100%가 되는 것은 아니잖나."
안병훈 공정거래위원회 송무(소송업무)담당관은 공정위가 변호사 신규채용에 소극적이란 지적에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는 "아무리 능력 있는 변호사라도 질 만한 사건은 지는 것"이라며 "특히 공정위의 경우 승소율 80%를 넘기기가 어려운데, 이는 변호사를 충원한다고 꼭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법원의 들쑥날쑥한 판결 등 공정위가 처한 특수성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최근 상황을 돌아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공정위는 지난달 23일 기자들을 모아놓고 '패소방지 대책'이란 걸 내놨다. 올해 들어 기업과의 소송전에서 줄줄이 패하며 여론의 뭇매를 맞자 부랴부랴 진화에 나선 것이다.
패소방지 대책은 새로 뽑는 변호사들을 송무담당관실에 집중 배치하고, 이들로 법률자문 전담팀을 꾸린다는 내용이 골자였다. 법률자문 전담팀은 공정위 각 부서에 충실히 법률정보를 제공해 사건을 '잘 만들도록' 돕는다. 사전에 꼼꼼히 법리를 따져 소송이 붙을 시 최대한 승소할 수 있게 한다는 목표다. 이 팀 변호사들은 소송이 시작되면 다시 본무대인 재판정으로 나서는 전천후 플레이어다.
공정위가 작심한 듯 패소방지 대책을 발표하자 '조만간 변호사 5명가량이 신규 채용될 것'이란 관측이 조직 안팎에서 나왔다. 언론 보도로도 이 같은 사실이 전해졌는데, 공정위는 별다른 부인을 하지 않으며 사실상 이를 인정했다.
대책 발표 보름여가 지난 9일 현재 공정위의 분위기는 전의를 불태우던 간담회 때와는 딴판이다. 타 부서에 있던 변호사 2명이 송무담당관실로 전보조치됐을 뿐 신규채용은 계획조차 없다. 변호사가 기존 3명에서 5명으로 늘어났고 법률자문 전담팀은 이 인원으로 구성할 생각이다. 김준하 공정위 운영지원과장은 "보유하고 있는 변호사 인력을 효율적으로 재배치했다"며 "올해 송무담당관실 변호사 정원이 5명으로 정해져있어 더 뽑을 순 없다"고 잘라 말했다.
공정위가 생각을 바꿔 내년 초 송무담당관실 변호사를 신규채용한다고 가정해도 발령 시기는 최소 그 해 하반기쯤이 될 전망이다. 공무원 특별채용 과정이 보통 6개월 이상 소요되기 때문이다.
공정위의 겉 다르고 속 다른 패소방지 대책은 '고식지계(姑息之計)'라는 사자성어를 떠올리게 한다. 당장의 위기나 모면해보자는 잔꾀에 지나지 않다는 말이다.
변화를 피하는 사이 공정위 패소율(확정판결 건수 기준)은 2012년 4.4%(2건), 2013년 6.5%(3건), 지난해 16.8%(16건), 올해 37.5%(3건)로 수직상승하고 있다. 패소해 기업에 이미 돌려줬거나 앞으로 돌려줘야 할 금액이 올 들어서만 2600억원에 달한다. 이는 모두 국고에서 충당한다. 소 잃고 외양간도 못 고치는 것이 공정위의 현실이다.
세종=오종탁 기자 ta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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