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구조는 서양식, 내부는 일본식으로 건축사적 가치 있다"
[아시아경제 원다라 기자]
16일 오후 서울 중구 신당동 한 골목. 황사가 섞인 뿌연 봄바람이 부는 이 골목의 치킨집과 부동산중개소 사이 야트막한 경사 위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가 서 있었다. 박 전 대통령이 5.16 쿠데타를 결심했다고 알려진 바로 그 곳이다.
단층집 진녹색 철문을 열고 들어서니 작은 마당에 박 전 대통령과 한복을 입은 부인 고 육영수 여사가 실물 크기와 비슷한 사진 조형물로 서 있었다. 이 집에서 박 전 대통령 일가는 1958년부터 1961년까지 이 가옥에 거주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이 곳에서 초등학교 1학년부터 3학년까지 살았다.
가옥은 응접실을 중심으로 한 바퀴 돌면 다시 응접실로 나오는 구조였다. 응접실로 들어서서 왼쪽으로 가면 육영수 여사가 생전에 사용했다는 안방이 나왔다. 안방에 들어서서 오른쪽 문을 열면 박근혜, 박근령 자매가 살았다는 자녀방이 나오고 자녀방에서 또 오른쪽 문을 열면 부엌으로 연결된다. 부엌에서 화장실을 지나면 박 전 대통령이 사용했다는 서재가 나왔다. 서재에서 다시 오른쪽 문을 열고 나오면 응접실이었다.
마당에 들어서 오른쪽을 보면 차양이 드리워진 목재 마룻바닥이 있다. 마룻바닥을 딛고 올라서면 ‘옥천 출신’ 서예가가 썼다는 ‘신이심정(神怡心靜)’ 이라고 쓰인 글씨가 방문객들을 맞는다.
어린 자녀와 함께 살았던 박 전 대통령 부부가 자녀에게 사다줬음직한 분홍색 드레스의 마론 인형도 글씨 아래 놓여있다. 좌측 응접실 의자 위에는 누가 그렸는지는 전해지지 않는 난 그림이 하나 걸려있다.
응접실 왼쪽 문을 열고 들어가면 흰색 커튼 아래 목재 서랍 위에는 재봉틀과 박 전 대통령 내외의 결혼사진, 가족사진이 올려져 있다. 안방 오른쪽 문을 열고 들어가면 자녀방이 나온다. 자녀방에는 당시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근혜,근령 자매가 사용했던 방으로 두 자매가 각각 장충초등학교 3학년과 1학년이었을 때 썼음직한 교과서와 문구용품들, 실로폰 등이 놓여있었다.
응접실 오른쪽 문을 열고 나가면 부엌이 있다. 부엌은 당시 사진 등 참고할 만한 자료가 없어 부엌 재현대신 대한뉴스와 당시 잡지등을 관람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변형됐다. 대한뉴스 영상자료 10편과 1961년 발간된 잡지 ‘사상계’, ‘가정생활’, ‘학원’,‘영화세계’가 유리 전시대 위에 놓여있다.
화장실을 지나 서재로 들어가니 5.16 쿠데타 당시 시청 앞에 박 전 대통령이 입고 나타난 것과 같은 모양의 진녹색 전투복 점퍼가 벽에 걸려 있었다. 그리고 당시 일반 시민이 쓴 5.16 쿠데타 당시의 일기가 두 편 일기장 째 펼쳐져 있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부대가 지방에 있어 늘 거주하지는 않았지만 이따금 올라와 사용한 방이라고 했다.
조영훈 서울시 역사문화재과 학예연구사는 “그 당시의 물품은 한 점도 남아있지 않으나 언론 자료등으로 최대한 당시 물품을 구해 재현했다”고 말했다.
시는 박근혜 대통령과 박근령씨 등 박 전 대통령의 유족으로부터 동의를 얻어 문화재 공간으로 조성했다. 1930년대 신당동에 대단위로 조성된 ‘문화주택’중 유일하게 남은 가옥으로 건축사적인 가치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조 연구사의 말처럼 건물은 우리 전통 한옥이라고도 할 수 없고 양옥이라고도 할 수 없는 중간 형태였다. 실제 마룻바닥과 일본식 진열대 ‘도코노마’와, 온돌방이 한 데 어우러진 형태였다. 지붕은 양옥방식으로 지어졌다. 조 연구사는 이 건물의 주목할 만한 점을 “응접실을 둘러싸고 배치된 부분”이라며 “가옥 전체는 서양식이지만 안방과 서재등이 온돌방으로 되어있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 생가는 17일부터 일반인들에게 공개된다. 박 전 대통령 생가 인근 한 주민 조계자(53)씨는 “한 번도 들어가 보지는 못했는데 옆 건물 옥상에서 내려다보니 멋있다”며 “개장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원다라 기자 supermo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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