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뉴욕=김근철 특파원] 미국과 중국이 한국을 두고 힘겨루기에 들어간 것 같다. 그동안 쉬쉬하며 미뤄온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ㆍ사드)' 도입을 둘러싼 논란이 결국 뇌관으로 등장한 것이다.
사실 이는 충분히 예견됐던 일이다. 중국이 급성장하며 미국과 주요 2개국(G2) 체제를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옛 소련 붕괴 이후 안주했던 미국은 새로운 맞수 중국을 견제하는 데 골몰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정부가 집권 2기에 들어서면서 아시아 중시 전략(Pivot to Asia)을 최우선 전략 과제로 선언한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도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대국굴기(大國堀起)를 선언한 데 이어 미국에 '신형 대국 관계'까지 요구하고 있다. 당당히 G2의 리더로 대접받겠다는 것이다.
이런 미국과 중국의 파워가 동아시아에서 충돌하면서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곳이 한국이다. 박근혜정부는 전통적인 한미 동맹 관계를 중시하면서도 한중 관계 발전에도 공들였다. 워싱턴 일각에서는 이에 대해 "균형추를 중국 쪽으로 옮겨 놓으려는 것"이라고 의심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불거진 사드 논란은 결국 미국과 중국의 줄 세우기 시험대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6월부터 한반도 사드 배치 관련 보도가 심심치 않게 나왔다. 지난 12일에는 한미 연합사가 단독으로 한국 내 후보지 조사를 마쳤다고 밝혔다. 이에 미국이 한국의 조속한 결단을 우회적으로 압박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지난해 7월 방한한 시 주석은 사드 배치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이후 중국의 외교ㆍ안보 라인은 틈만 나면 한국의 결단을 재촉하고 있다. '전략적 모호성'을 내세워 버텨온 한국 정부가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는 상황이다.
사드 논란은 이제 첫 단추에 불과하다. G2의 견제와 대립 전략이 이어지는 한 앞으로 한국 정부는 유사한 사례에 숱하게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사드 논의의 흐름이 매우 우려된다. 국익을 위해 도입 결정이 내려졌다고 치자. 미국은 그저 당연한 일로 받아들일 것이다. 하지만 완패한 중국의 반발과 그에 따른 파장은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협상 테이블에 사드만 올려져 있으면 '올 오어 나싱(All or nothing)' 구도를 피할 길이 없다. 한국 정부로서는 한ㆍ미ㆍ중이 서로 성과와 체면치레를 공유할 수 있는 협상 구도가 절실해졌다.
예컨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참여 문제를 협상 테이블에 함께 올려놓을 경우 분위기가 상당히 달라질 수도 있다. 한국의 AIIB 참여는 시 주석이 직접 촉구했을 정도로 공을 들인 이슈다. 반면 미국은 AIIB를 기존 아시아개발은행(ADB)과 자국의 금융 주도권에 중국이 도전하려는 포석으로 보고 견제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도 한국은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과 중국의 틈에서 교착돼버리면 한국은 아무 소득 없이 스스로 전략적 가치만 떨어뜨리게 된다. 동아시아에서 미국과 중국 사이의 '린치핀(linchpinㆍ바퀴 멈추개)'으로 기능하고자 하는 전략적 고민이 한국에 절실한 시점이다.
뉴욕=김근철 특파원 kckim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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