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태진 기자]경영권 분쟁이 불거진 일동제약의 주주총회가 열흘 앞으로 다가오면서 초대형 기업인수합병(M&A) 실현 가능성이 업계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2대주주 녹십자가 제안한 이사진 교체 안건이 통과될 경우 자연스레 M&A 이슈가 급류를 타면서 업계 지각변동 '태풍의 눈'으로 급부상하기 때문이다.
10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일동제약은 오는 20일 사내 및 사외이사, 감사 선임 안건 등을 처리하기 위한 정기주주총회를 개최한다. 녹십자는 '경영권 참여'를 겨냥해 허재회 송암에치칼(전 녹십자 대표이사 사장)과 김찬섭 성신회계법인 대표이사(녹십자셀 사외이사)를 각각 사외이사와 감사로 추천한 상태다. 일동제약은 이를 부결시키기 위해 전사적인 역량을 결집하고 있다.
일동제약은 전날 "(2대 주주인) 녹십자의 주주제안을 주주총회 안건으로 상정했지만 양 사간 기본적 신뢰가 없고, 시너지 여지가 많지 않은 만큼 강력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일동제약 노조도 연일 녹십자를 향해 "경영 간섭을 중지하라"며 비난 수위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경영권 방어가 녹록치만은 않은 상황이다. 실제로 이날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주주명부 폐쇄일) 일동제약 최대주주는 윤원영 회장 등 오너 일가 특수관계인으로 32.52% 지분을 보유, 녹십자 측(29.36%)보다 3.16%포인트 많다. 하지만 일동후디스가 보유한 우호지분 1.36%는 상호출자 관계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어 양측 간 의결권 지분 차이는 1.8%포인트에 불과하다.
3대 주주로 의결권 지분 9.18%를 보유한 피델리티펀드가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데 자산운용사 특성상 시세차익 극대화를 겨냥해 의결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 익명을 전제로 한 대형증권사 애널리스트는 "피델리티는 지난해 일동제약의 지주회사 전환 안건을 녹십자와 연대해 무산시킨데 이어 경영권 분쟁 이슈로 주가가 오르자 일부 차익실현에 나섰다"며 "이번 주총에서도 녹십자 손을 들어줘 지배구조 변동 수혜를 노릴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실제로 전날 피델리티는 일동제약 주식 25만2838주(1.01%)를 장내 매도했다고 공시했다. 보유 지분은 8.99%로 줄었지만, 지난해 처분한 20만6600주(지분율 0.81%)의 의결권은 이번 주총에서 유효하다.
녹십자도 주주제안 관철을 위한 물밑 작업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만큼 경영권 참여 의지가 확고하다. 녹십자는 계열사인 녹십자생명(현재 현대라이프)이 2011년 장내매수를 통해 일동제약 지분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금융회사의 단순투자라는 주장이었지만, 녹십자생명이 현대자동차그룹으로 피인수되고 녹십자가 이 지분을 되사오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녹십자는 2012년 12월 환인제약이 보유하던 일동제약 지분 7.06%를 사들여 지분율을 15.3%까지 늘렸고, 이후 개인주주 안희태씨와 이호찬씨의 지분을 넘겨받으면서 29.36%를 확보한 뒤 투자목적도 '경영 참여'로 변경했다.
이에 대해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녹십자는 전문의약품, 일동제약은 일반의약품에 특화되어 있어 합칠 경우 시너지 효과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며 "녹십자의 적대적 M&A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일동제약과 녹십자가 한 가족이 될 경우 연 매출 2조원을 노려볼 수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제약사가 탄생하게 된다. 지난해 일동제약과 녹십자는 각각 4175억원과 9753억원의 매출을 올린 바 있다. 현재 1위는 유한양행으로 지난해 1조175억원의 매출을 올려 제약업계 최초로 1조 클럽에 가입한 바 있다.
조태진 기자 tj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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