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재판부 '항로' 범위 넓게 해석해 유죄 인정…운항중 여객기 지상이동도 항로로 인정한 첫 판례
[아시아경제 이혜영 기자] '땅콩회항' 사건으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41)의 1심 선고에서는 '항로변경죄'가 주목받았다. 국내에서 유죄가 인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다. 항소심 재판에서도 공방은 계속될 전망이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2부(부장판사 오성우)는 12일 열린 선고공판에서 이번 사건을 “인간의 자존감을 짓밟은 사건”이라며 조 전 부사장에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조 전 부사장에 적용된 5개 혐의 가운데 항공보안법상 항공기항로변경·항공기안전운항저해폭행, 형법상 업무방해 및 강요 등 4가지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이중 조 전 부사장의 운명을 결정한 것은 항로변경죄다. 재판부는 비행기가 상공이 아닌 지상에서 회항했더라도 운항을 시작한 이후이기 때문에 항로변경 혐의가 인정된다고 봤다.
재판부는 “항공법 관련 법령은 항로를 노선, 진행방향 등 다양한 의미로 사용하고 있고 통일적으로 공로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지 않다. 항로변경죄에 있어 공로를 200m 이상과 이하로 구별할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조 전 부사장 측은 항공기가 지상에서 불과 17m 이동했고 지상로까지 항로에 포함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에 반하는 해석이라고 주장해왔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항로의 개념을 둘러싼 공방은 검찰이 조 전 부사장을 기소하던 시점부터 논란거리였다. 국내에는 항로를 명확히 규정한 판례나 판단의 근거로 삼을 수 있는 유사 사건이 없었다. 이 때문에 재판부는 해외 협약을 토대로 항로의 개념을 설정했다. 헤이그, 몬트리올 협약은 보호대상인 항공기의 범위를 '운항 중' 상태로 확대했고 우리 항공보안법도 이에 따랐다는 근거를 내세웠다.
결국 '항공기 문이 닫힌 순간부터 비행기는 운항에 들어간 것이며 그에 따른 이동경로는 항로로 봐야 한다'는 검찰 측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번 재판부의 판단에 따라 앞으로 유사 사건이 발생할 경우 항로의 범위를 보다 넓게 해석할 가능성이 커지게 됐다. 조 전 부사장 측은 항소를 통해 다시 한 번 항로의 개념을 놓고 법적 공방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조 전 부사장 측이 반성문을 제출하고 추가적으로 피해자 합의와 피해복구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어 2심에서는 기본적인 사실관계에 대한 공방보다는 항로변경죄에 초점이 맞춰질 전망이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항로에 대한 개념은 여전히 논란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조 전 부사장 측이 항소심에서 이 부분에 더욱 집중하게 될 것”이라며 “반성과 사과의 뜻을 재차 밝혔고 피해자 합의에 대해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집행유예 결과를 충분히 바라볼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혜영 기자 itsm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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