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미국 하버드-스미소니언 천체물리센터 연구진은 빅뱅 직후 '우주 급팽창(인플레이션)'의 증거를 발견했다고 발표하여 과학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당시 그들은 남극에 설치한 '바이셉2'라는 전파망원경으로 우주배경복사를 관측하여 빅뱅 직후에 일어났던 급팽창의 증거를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우주 탄생의 비밀을 밝혀 줄 세기의 발견이라는 평가와 함께 당장 노벨상 수상 가능성까지 제기되었던 이 발견은 결국 오류로 판명되었고 연구진은 10개월 만에 공식적으로 자신들의 결과를 철회했다.
한 가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발견의 오류가 빅뱅이론을 위협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번에 오류로 드러난 것은 빅뱅 직후에 있었던 급팽창의 증거를 발견했다는 주장이었다. 우주가 138억 년 전 빅뱅으로 태어나 지금까지 팽창을 계속하고 있다는 빅뱅이론은 여전히 우주의 탄생을 설명하는 가장 강력한 이론이다. 급팽창 이론은 빅뱅이론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몇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한 것으로, 빅뱅 직후 극히 짧은 시간 동안 우주가 급격히 팽창했다고 보는 이론이다.
1964년에 발견된 우주배경복사는 빅뱅이론의 가장 강력한 증거이다. 우주배경복사는 우주가 태어난 지 약 38만년 후에 처음으로 빠져나와 우주에 균일하게 퍼져있는 빛으로, 우주 탄생과 진화의 비밀을 밝혀내는 데 가장 중요한 자료로 이용되고 있다. 급팽창이론은 빅뱅이론의 단점을 보완하는 이론으로 많은 과학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지만 아직 그 직접적인 증거가 발견된 적은 없다. 급팽창이론의 증거 역시 우주배경복사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급팽창 당시에는 시공간이 크게 휘어지기 때문에 마치 호수에 돌을 던진 것과 같은 물결 형태의 중력파가 생긴다. 이 중력파가 우주배경복사에 영향을 미쳐 회전하는 형태의 편광의 흔적을 남기게 되는데 바이셉2 연구진이 발견했다고 주장한 것이 바로 우주배경복사에 남아 있는 편광의 흔적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우주배경복사의 편광이 급팽창 당시 발생한 중력파 때문만이 아니라 다른 원인으로도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별과 별 사이에 미세하게 퍼져 있는 우주 먼지들은 중력파와 거의 비슷한 형태의 편광을 만들어낸다. 이 문제는 바이셉2 연구진의 발표 직후부터 제기되었고, 플랑크라는 우주망원경을 이용하여 우주배경복사를 정밀하게 관측하고 있는 유럽의 연구진은 지난해 9월에 바이셉2의 자료가 우주 먼지에 의한 것이라는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이후 바이셉2 연구진과 플랑크 연구진은 공동으로 검증 작업을 벌였고, 결국 지난해 3월의 발표 결과가 우주 먼지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급팽창의 증거 발견이 오류로 드러났다고 해서 급팽창이론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급팽창이론은 여전히 빅뱅으로 태어난 우주가 현재의 모습을 가지게 된 이유를 설명해주는 가장 강력한 이론으로 인정받고 있다. 많은 과학자들은 이번 발견은 잘못된 것으로 판명되었지만 좀 더 정밀한 관측을 통해서 분명한 증거가 발견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급팽창에 의한 중력파가 우주배경복사에 어느 정도 규모의 흔적을 남길지에 대해서는 이론적으로 예측된 값이 있다. 정밀한 관측을 통해서 예측된 값이 측정이 된다면 급팽창이론의 강력한 증거가 될 것이다. 그런데 만일 어느 수준 이상의 정밀한 관측을 통해서도 급팽창의 증거가 발견되지 않는다면 더 흥미로운 결과가 될 수도 있다. 우주의 현재 모습을 올바르게 설명해주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급팽창이론이 잘못된 것일 수 있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우주를 설명하는 새로운 이론을 찾아내야만 할 것이다. 그 답은 몇 년 안에 알게 될 것이다.
이강환 국립과천과학관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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