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우리는 나무 형제다(Tree Brothers)"
소나무 사진으로 잘 알려져 있는 작가 배병우(65)는 마이클 케나(62)와 함께 사진전을 열며 이렇게 말했다. 각각 한국과 영국을 대표하는 두 풍경사진 거장들이 새해 첫 전시를 함께 열고 있다. 두 작가는 빠르고 편리함을 추구하는 디지털 시대에 30년 넘도록 한결같이 아날로그 필름 카메라만을 사용한다는 공통분모가 있다. 유독 풍경사진만을 고집하며 외길만을 걸어왔던 점도 비슷하다.
최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지난해 케나의 '솔섬' 저작권 소송에 대한 얘기를 피해갈 수 없었다. 진위가 어떻게 됐든 간에 케나는 그 일로 피로감이 컸을 법하지만, '형제'인 배병우와 함께하는 자리라선지 밝은 표정이 역력했다. '솔섬 사진' 공방은 공근혜갤러리가 대한항공을 상대로 이 화랑 전속작가인 마이클 케나의 작품을 모방했다면서 광고사진 공모전 당선작에 대해 소송을 낸 것에서 시작됐다. 한국 법정은 지난해 3월 1심에 이어 12월 항소심에서도 대한항공의 손을 들어줬다.
배병우는 "대한항공 공모전 당선작은 사진을 하는 작가라면 '잘 카피한 작품'으로 보인다. 판사의 의견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생각이 다르다는 것이고, 예술 저작권을 바라보는 관점이 성숙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라며 "예술적 교감과 여행과 사진 그리고 작가로서의 역할을 생각해보면서 함께 전시를 열게 됐다"고 말했다.
예술 저작권 환경에 대해 비판적 관점을 제시한 듯 두 사진작가의 전시 제목은 꽤 역설적이다. '흔해 빠진 풍경사진'이라는 제목은 누구라도 찍을 수 있는 풍경이지만 '예술로서의 사진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전시장에는 경주 남산의 웅장한 소나무를 찍은 배병우의 작품들이 걸려 있다. 길이만 2m 60cm에 달하는 대작들이다. 화선지에 먹으로 그린 듯 굳은 절개와 지조를 지닌 강직한 소나무들이 무게감 있게 다가온다. 이와 나란히 강원도 삼척의 '솔섬'을 촬영한 마이클 케냐의 사진이 비치돼 있다. 또한 지난 10월부터 파리, 독일, 미국, 그리고 영국의 화랑과 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케나의 '프랑스' 시리즈 작품도 선보이고 있다. 파리 세느강, 프랑스 남서부에 위치한 와인으로 유명한 보르도 지방의 포도 밭, 브르곤뉴 지방의 시골 마을, 그리고 프랑스 남부에 위치한 니스 해변 등이다. 케나의 작품에도 배 작가의 사진처럼 숲과 나무를 주인공으로 한 풍경들이 많다. 대신 케나는 작은 흑백사진들을 위주로, 직접 개인 암실에서 인화해 작품을 완성한다. 케나는 "배병우의 대형 사진은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 길을 잃어버릴 것 같은 장엄함을 선사한다. 나의 경우는 관객들에게 친근함을 추구한다"면서 "결과물은 다르지만 자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태도가 비슷하단 점을 느낀다. 이번 기회를 통해 배 작가를 가까이 만나 이야기 나눌 수 있어 영광"이라고 말했다.
케나의 작품에는 거장 앙리 까르티에 브레송(Henri Cartier Bresson)에 대한 오마주의 의미로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의 시골 길을 담은 작품도 있다. 그는 "브레송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다. 전문작가가 되기 이전 거장들을 따라해보는 과정이 중요했다. 알프레드 스티글리츠, 유진 아제 등도 매우 좋아했다"며 "어떤 장소에 도착하면 '여기서 브레송이라면 이런 걸 찍었겠구나'라는 느낌이 온다"고 말했다. 여기에 배병우는 "케나가 언급한 작가들은 대부분 '흑백 사진' 작가다. 브레송은 포토저널리즘으로 분류되고 보도사진 작가 그룹인 매그넘의 멤버지만 사실 회화를 전공했고, 별로 남아 있진 않지만 풍경 사진도 너무 좋다"고 부연했다.
풍경사진가로서 두 작가들은 세계적으로 실력을 인정받으며 각국 미술관과 화랑에서 전시회를 가진 바 있다. 또한 사진작품 컬렉터로도 유명한 영국 가수 엘튼 존은 이 둘의 열렬한 팬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이 대중화되는 시대, 작가의 역할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 배병우는 "연필 자체 보다 연필로 무엇을 어떻게 그리냐가 중요하듯, 사진기라는 매체를 가지고 고민하고 노력하다보면 결국 작가로서의 비전과 상상력의 비중이 커질 것"이라고 했다.
한편 이번 전시를 기획한 공근혜갤러리 대표 공근혜씨는 "사진 예술이 기술로 전락된 판결에 대해 안타까울 뿐이다. 공모전 당선자 역시 케나의 작품을 먼저 봤고, 활용했다고 이야기했지만 기업은 어떠한 검증절차도 없었다. 기업의 도덕성을 문제 삼았던 것이지 개인을 상대로 소송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라며 "이번 전시를 통해 예술을 대하는 자본가가 지녀야 할 윤리가 어떠해야 하는지도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3월 8까지. 서울 삼청동 공근혜갤러리 02-738-7776.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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