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클루니 감독의 영화 '굿나잇 앤 굿럭'(2005년작)을 본다. 흑백영화가 이토록 생생하고 시원하던가. 가슴이 쿵쿵 뛴다. 1935년부터 1961년까지, 전설적인 뉴스맨이었던 에드워드 머로를 연기한 데이빗 스트래던의 눈빛이 심장을 쏜다. 그는 뉴스 다큐 프로그램인 '시잇나우(See it now)'를 진행하면서 tv초기 미디어에 영혼을 심는다.
1950년대 초반 미국 사회 전체를 레드콤플렉스에 휩싸이게 한 매카시즘의 '살아있는 입', 조셉 매카시 상원의원을 상대로, 일대 결전을 벌이는 내용을 담았다.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끼우고(요즘의 대한민국 정부가 봤다면 혀를 찰 풍경이다) 어마어마한 촉광의 시선으로 시청자를 고개 돌린 포즈로 쏘아보며 진행하는 머로의 지적인 고뇌와 단호함이 저절로 팬심을 이끌어낸다. 그의 말이다.
"TV는 우리를 가르칠 수 있습니다. 계몽하고 영감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려면, 우리가 그런 목적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는 한, TV는 바보상자일 뿐입니다. 굿나잇 앤 굿럭!"
언론사 생활을 여태껏 해오면서, 얼마나 자주 부딪쳤던 절망들인가. 저 뉴스맨이 얘기하고 있는 건 그대로 내게로 쏘는 질문의 화살이다. 언론을 제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수많은 '나'들이 이 땅의 언론도 망쳐놓지 않았던가. 무기력하고 무능하고 기회주의적이며 권력에 수시로 야합하면서 배금주의에 눈먼 '언론영리주의자'들이 끝없이 쏟아져나와, 언론을 대중의 신뢰를 잃어버린 영혼의 부도업체로 전락시키지 않았던가.
오늘을 움직이는 뉴스가 뭔지도 모르는 인간이 머로의 자리에 앉아 날마다 헛발질을 하면서도 스스로의 참괴를 못느끼는 진풍경, 통증도 진화도 없는 무생물 데스크들, 그런 언론의 내면을 이해못하고 오직 실적으로만 밀어붙이며 철학없는 경영으로 일관해온, 언론사의 '기본에 대한 치매'들이, 지금 이 시대, 미디어 지평 전부를 '찌라시 상자'로 만들어놓지 않았던가. 생각만 해도 가슴이 터질 듯 하다.
머로의 얼굴을 대문짝만하게 데스크탑 초기화면에 걸어놓으며, 중얼거린다. 굿나잇 앤 굿럭!
이상국 편집에디터, 스토리연구소장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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