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독단적 규정 신설
[아시아경제 이지은 기자] "사업을 포기하라는 거죠. 어떤 기업이 억류당할 위험을 무릅쓰고 개성공단에 남아 사업을 하려 하겠습니까."
북측이 지난해 기업인들을 억류할 수 있는 규정을 독단적으로 신설하면서 개성공단 기업인들의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률 제한 폐지에 이어 점점 개성공단에서 기업을 운영하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개성공단 기업인은 27일 본지 통화에서 "억류 규정이 시행되면 기업 경영을 할 수 없는 환경이 된다"며 "우리 정부가 합의하지 못한다고 했던 사안인데도, 북측이 일방적으로 정한 것"이라며 비판했다. 북측은 지난해 9월 개성공단 운영세칙을 개정, 임금ㆍ세금 등을 미지급하는 등 계약이행을 제대로 하지 않은 기업은 손해를 배상할 때까지 책임자를 억류할 수 있도록 개정했다. 우리 정부는 이에 대한 협의를 요청했지만 북측은 대화를 피하고 있다.
미지급 임금 등을 떼먹고 '야반도주' 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라지만 너무 극단적인 처사라는 반응이다. 또 다른 개성공단 기업인은 "아직 개성공단에서는 단 한 곳의 업체도 대금을 미지급하고 잠적한 일이 없다"며 "2013년 폐쇄 당시 일부 업체의 임금이 미지급돼 7명이 일시적으로 억류당한 일이 있었지만, 정부가 대신 지급했다"고 말했다.
일부 기업들은 개성공단 외에도 국내외에 공장을 여러 개 갖고 있지만, 개성공단에만 공장이 있는 기업들은 섣불리 발을 빼기 어렵다. 중국은 임금과 규제 때문에 진출이 어렵고, 동남아 역시 비슷한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개성공단기업협회 관계자는 "개성공단에 본거지를 둔 기업들이 중국이나 동남아로 빠져나가기 위해 공장을 세우는 것은 수지도 맞지 않고 불가능에 가깝다"며 "이러나저러나 개성공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하지만 개성공단의 장점이었던 인건비가 오를 것으로 예상되면서 향후 이탈 업체가 나올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다행히 북측이 이달 중에는 개정된 임금 규정을 적용하지 않았지만 기업인들은 빠르면 3월, 늦어도 8월께에는 임금이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한 개성공단 기업인은 "지난해처럼 10% 인상 통보를 하는 경우, 기업을 못하겠다는 소리도 나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기업의 철수로 인한 억류 사태가 일어나게 된다면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개성공단에만 공장을 두고 있는 한 기업 대표는 "밀린 돈 없이 꼬박꼬박 지급하고 있는데도 억류 조항을 신설했다는 소식에 괜히 불안했다"며 "고의가 아니라 경영악화로 폐업해 북측에 억류당하는 경우가 생긴다면 정부가 나서서 도와줘야 한다"고 밝혔다.
이지은 기자 leez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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