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서울 종로구 공평동 재개발 부지에서 16세기 임진왜란 직전의 도시 흔적이 드러났다. 500년 전 도로와 골목은 현대까지도 이어온 양상이다. 이곳에서 발견된 집터는 양반가, 중인, 서민 등 계층을 막론한 한옥의 모습으로, 출토된 유물 중에는 기와 조각, 백자와 청자의 파편들 그리고 우물 속에 빠진 동물 뼈 등이 나왔다.
15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공평동 61번지 일원 재개발 지역 내 발굴조사 현장을 찾았다. 3.5~4m 깊이로 파내려간 총 6736.2㎡ 면적의 발굴현장에서는 5m 가량 중심을 가르는 도로와 2.5~3m 정도의 골목 세 곳이 보였다. 총 37개동 건물지와 20개 필지로 이뤄진 현장에는 한옥을 받쳤던 장초석과 장대석, 잡석 등과 담장, 나무 기둥들이 드러난 집터들, 소로 추정되는 동물 뼈, 화재를 입은 대청마루가 그대로 주저앉은 흔적, 배수시설들이 눈에 들어 왔다.
신희권 서울시립대 교수는 "집들이 석축이라던지 개보수를 거쳐 가며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 흔적을 그대로 담고 있으며 조선시대 도로가 현재까지도 이어져 온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며 "지세, 지형에 따라 구획된 필지가 거의 변함없이 500년 이상을 유지한 양상이다. 수도 서울이 가진 장구한 역사성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며, 한양도성 4대문 안에 과거 흔적들이 상상이상으로 잘 보존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 현장은 임진왜란 직전 16세기 문화층이 잘 보존돼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왼편으로는 당시의 고관대작들의 가옥 내지 마루, 부엌, 온돌 등을 모두 살펴볼 수 있으며, 오른편으론 중인과 서민들의 가옥 터도 남아 있다. 당시에도 종로는 청계천을 따라 북쪽으로 놓여있는, 동서를 가로지르는 도로였으며 그 위에 자리한 공평동 주변으로는 보신각, 의금부터, 수진궁터, 순화궁터, 사동궁터, 시전과 행랑 등 조선시대 중요한 시설이 위치해 있었다. 신 교수는 "이 현장은 일반거주구역으로 민가나 고관대작들이 사용하던 생활용품들이 발굴됐다"며 "조선 전기 특징을 보여주는 이천 또는 여주의 관요백자, 중국에서도 사용된 예가 드문 청화백자, 거울 등 양질의 유물들이 출토됐다"고 말했다.
해당 발굴 현장은 1978년 도시 개발법에 의해 19개 지구가 계획된 재개발 지역에 속한다. 재개발 구역상 공평 1,2,4지구다. 1980년대 중반 조사지역 동측에 인접한 공평 3,5,6지구가 재개발이 완료된 후 1999년에는 남측의 공평 19지구의 재개발 공사가 마무리됐다. 1999년 문화재보호법이 개정되기 이전에 완료돼 이들 사업부지에 대한 발굴조사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서측에 인접하는 청진구역은 최근 발굴조사 이뤄졌다.
이번 공평동 발굴현장에는 앞으로 호텔이 들어설 예정이다. 호텔 건설에 앞서 지난해 6월 27일부터 진행된 조사는 오는 2월 28일까지 총 179일 동안 계속될 예정이다. 발굴조사기관인 한울문화재연구원의 박호승 팀장은 "호텔이 지어지면 1층이나 지하에 이번에 발견된 도로와 골목길의 동선을 유지하는 복원작업을 할 예정"이라며 "일부 건물지는 보존처리를 통해 공평동 한옥 역사를 살필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