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 100세 시대 ③소액주주들 제 목소리찾기
국민연금, 재작년 의결권 반대 비중 17%로 치솟아
기권표로 삼성重·엔지 합병 무산…거수기 오명 벗어
주주제안·전자투표제 소액주주 주권 보호·강화 한몫
[아시아경제 조유진 기자] '25%'.
상장 기업 전체 발행 주식물량 가운데 소액주주에게 의무적으로 분산하도록 하고 있는 최소 비중이다.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 상장규정 29조 1항 3호, 코스닥시장 상장규정 6조 1항 3호에 이같이 명시되어 있다.
대주주와 경영진을 규제하고 투명성을 강화하겠다는 기본 취지와 함께 기업들이 의사결정과정에서 25%만큼은 소액주주에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선진국의 경우 소액주주들의 제목소리 내기는 주가 수익률 등 성과로 이어지곤 한다. 하지만 국내의 경우 여전히 소액주주 입장에서 제목소리를 내는 것이 쉽지 않은게 현실이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근본적으로 주주가치 보호라는 마인드가 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연기금 같은 기관투자자들의 적극적인 활동만이 소액투자자들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가 주로 벤치마킹하는 해외 주요 연기금인 미국 캘퍼스, 스웨덴 AP3 등은 투자자와 기업간의 상시적인 대화를 통해 의사결정을 조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주권강화, 구원투수는 '연기금'= A기업과 합병을 추진중인 B기업의 지분을 보유한 소액주주가 합병을 반대한다고 가정해보자. 이 소액주주가 취할 수 있는 의사표시는 뭐가 있을까.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를 통해 '주식을 내다 파는 것' 뿐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연기금의 역할론에 주목한다. 국민연금 등 연기금의 역할론은 IMF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외국계 투기 자본이 국내 기업들을 헐값에 사들이고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노출되면서다.
지난 2003년 SK 주식 14.99%를 확보한 영국계 사모펀드 소버린이 최태원 회장의 퇴진을 요구했던 '소버린 사태'도 일대 전환점이 됐다. 2006년 세계적인 기업사냥꾼 칼 아이칸이 KT&G 지분 6.59%를 확보, 2대주주로 올라서며 경영권 압박에 나선것도 연기금 역할 강화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연기금의 의결권 강화에 주목하는 이유는 소액주주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창구이기 때문이다. 주주가치에 침묵했던 국민연금도 최근 주권 강화에 적극 나서는 모습이다. 지난해 말 국민연금이 기권표를 행사하면서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안이 무산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추세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15일 자본시장연구원 등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행사한 안건(3030건) 가운데 반대 의사를 표명한 것은 전체의 8.3%인 251건으로 집계됐다. 기업의 주주총회 안건에 중립이나 기권한 경우는 39건(1.3%)이었다. 나머지 2740개(90.4%)의 안건에 국민연금은 찬성표를 던졌다.
특히 국민연금의 의결권 반대 비중은 2006년 3.7%에서 2007년 5%, 2008년 5.4%, 2009년 6.6%, 2010년 8.1%, 2011년 7% 등으로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2012년에는 상법 개정과 관련 정관 변경 반대 안건이 높아지면서 반대 비중이 17%까지 치솟기도 했다.
해외의 경우 연기금의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가 주가 수익률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미국 최대 공적연금인 캘퍼스는 1987년부터 기업 지배구조와 경영 상태가 좋지 않은 기업을 선정, 포커스 리스트를 발표하고 투자 대상 기업을 고를 때 이 리스트를 참고한다.
미국 캘퍼스가 주주권 행사를 위해 포커스 리스트에 올려놓은 기업들의 주가는 최근 30년 사이 최고 150% 상승하는 등 큰 폭의 오름세를 보였다.
국민연금도 배당을 적게 하는 기업을 선별해 배당 확대를 요구하는 가이드라인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일반 주주들의 주권 강화 측면을 주목했다는 점에서 괄목할 만한 변화다. 국민연금이 직접 저배당 기업 감시 리스트를 만들어 개별적으로 비공개로 통보하고, 1년이 지나도 배당을 늘리지 않으면 외부에 공개할 방침이다.
◆주주제안ㆍ전자투표제를 아시나요?= 유가증권 및 코스닥시장에 상장된 12월 결산법인의 지난해 정기주총에서는 16개사에 42건의 주주제안이 있었던 것으로 집계됐다. 주주제안은 주주총회에서 다뤄질 안건을 주주들이 직접 제안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의결권 있는 주식을 3% 이상 보유하거나 의결권 있는 주식 1%를 6개월 동안 보유하는 주주라면 누구나 주주제안을 할 수 있다.
주주제안은 삼성SDS 소액주주 운동으로 유명세를 탔다. 지난 2012년 삼성SDS 소액주주들이 삼성그룹 측에 삼성SDS 상장설을 주총 안건으로 다뤄달라고 제안한 것이다. 당시 소액주주들은 상장을 통한 장기투자자의 출구 마련, 소액주주 차등배당, 경영 투명성 제고, 사외이사 선임 등을 주장했다. 비록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잠 자고 있던 주주제안이라는 제도의 밀봉을 벗겨 주주권리를 보여준 사건으로 회자되고 있다.
주권 보호를 위해 거론되는 또 다른 장치로 전자투표제가 있다. 전자투표제란 주주가 스마트폰 등을 통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온라인 투표방식으로 주총장에 출석하지 않고도 특정 안건에 찬반을 표시함으로써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송민경 기업지배구조연구원 연구위원 "미국과 영국은 2000년, 독일과 일본은 2001년에 각각 전자투표제를 도입했다"면서 "일본 동경증권거래소의 경우 전체 상장사의 16.5%가 전자투표제를 활용하고 있는 등 실제 활용률도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김학균 KDB대우증권 투자전략팀 부장은 "전자투표제는 주주와 경영자의 이해관계가 배치되는 상황에서 위임보다 주주 이해관계를 더 정확하게 반영하는 측면이 있다"면서 "비용과 효용 면에서 합리적으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절차라는 점에서 유의미하다"고 짚었다.
조유진 기자 ti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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