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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시스템'이 낳은 '사기대출'…국민혈세만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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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보험공사·은행 허술한 시스템 노린 사기대출 또 적발…檢 "대출보증심사제도 보완 절실"

[아시아경제 이혜영 기자] 모뉴엘이나 KT ENS 협력업체 등 천문학적인 액수의 사기대출로 파장을 일으킨 사건은 '문지기' 역할을 해야 할 대출·보증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데서 비롯된 것으로 드러났다. 반복되는 대출 사기로 인한 피해는 보증을 선 국책기관으로 떠넘겨져 결국 국민 혈세만 낭비되고 있는 셈이다.


서울중앙지검 외사부(부장검사 노정환)는 지난해와 올해 연이어 터지고 있는 사기대출과 관련해 유령업체를 세우고 허위서류로 은행에서 거액의 대출을 받은 13명을 무더기로 적발했다고 14일 밝혔다. 검찰은 유령업체 대표와 브로커 등 4명을 구속 기소하고 6명을 불구속 기소하는 한편 달아난 3명은 지명수배했다.

이들은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사기대출을 목적으로 유령업체 설립과 폐업을 반복하며 범행에 착수했지만 대출심사를 한 은행과 보증을 선 무역보험공사, 신용보증기금 등 어느 곳도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사기범들은 수출실적이 있는 것처럼 서류를 조작해 세관에 신고한 뒤 발급받은 신고서 등을 은행에 제출했고 무역보험공사나 신용보증기금이 이 업체들의 보증을 섰다.


무역보험공사는 담보부족으로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수출 업체에 대해서는 수출실적만 증명하면 신용대출을 받도록 보증을 서 주고 있다. 좋은 취지로 출발한 제도지만 사기범들은 이 과정에서 공사 측이 형식적으로 서류심사를 진행한다는 것을 악용했다.

은행 역시 무역보험공사 등이 보증을 서는 점을 고려해 서류심사를 소홀히 했다. 현장실사를 진행한 경우도 있었지만 이마저도 미리 유령업체 대표에 예고를 하고 나가 브로커들은 회사 직원으로 가장해 근무하는 모습을 연출할 수 있도록 시간만 벌어준 셈이 됐다.


은행에 이어 보증기관 문턱도 쉽게 넘은 사기범들은 24억여원을 손에 쥔 뒤 업체를 폐업시켜 버렸고 대출액은 고스란히 보증을 선 기관들이 떠안았다. 허술한 대출·보증시스템을 간파한 브로커들은 사기대출을 받을 유령업체 대표를 모집한 뒤 이들로부터 10~30%씩의 수수료를 챙겼다.


범행 규모와 기간에서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1조8000억원대의 사기대출을 일으킨 KT ENS 협력업체 사건이나 전체 은행권 여신이 6700억원에 달하는 모뉴엘 사태도 이번 사건과 거의 동일한 수법으로 진행됐다. 무역보험공사나 은행에서는 피해규모가 눈덩이처럼 커질 때까지 사기행각을 몰랐던 점에 비춰보면 드러나지 않은 또 다른 범죄가 많을 수 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검찰 관계자는 "유령업체가 급하게 수출거래 내역을 꾸미는 과정에서 1년 전체가 아닌 몇 개월에만 집중해서 실적이 몰려있다거나 의심을 가질만한 정황이 있었지만 심사 과정에서 이 같은 허점이 지적된 적이 전무하다시피 했다"며 "결국 이런 부실대출로 인한 피해는 전 국민의 부담으로 전가되고 있어 대출보증심사제도의 보완이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혜영 기자 itsm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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