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백우진 기자] 스리랑카 국정을 가족과 함께 농단하며 장기집권을 노렸던 마힌다 라자팍사 후보가 3선에 실패했다.
BBC 등은 라자팍사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선거 패배를 인정했다고 전했다. BBC는 라자팍사 대통령의 공보 담당관이 이같이 밝히고 마이트리팔라 시리세나 후보가 이날 오후 취임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라자팍사 후보는 2005년 대통령에 취임해 2009년 타밀족 반군인 ‘타밀엘람해방호랑이’(LTTE)와의 25년 내전을 승리로 이끌었고 2010년 재선에 성공했다.
그는 재선 이후 3선을 금지한 헌법을 개정해 출마의 길을 텄다. 지난해 11월에는 대통령 선거를 조기에 실시한다며 3선 출마를 공식화했다. 오는 11월까지인 원래 임기 중 10개월을 포기한 것은 내전 승리의 기억이 국민에게 남아 있을 때 선거를 치러야 유리하다는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됐다.
라자팍사 대통령은 형 차말 라자팍사이 국회의장이 되도록 해줬다. 동생 고타바야에겐 자신이 겸임하는 국방부 장관 아래 국방부 차관 자리를 줬다. 다른 동생 바실에게는 경제부 장관을 맡겼다. 그의 아들인 나말은 국회의원이고 다른 아들과 조카도 여러 직위에 앉혔다.
그는 국정을 가족기업처럼 운영하는 것을 비판하는 언론을 탄압했다. 라자팍사 대통령의 친구였던 한 언론인은 정권을 비판하고 부패를 집요하게 파헤치다가 살해되기도 했다. 그 언론인은 변호사 출신으로 주간 ‘선데이 리더’를 발행하던 라산타 위크라마퉁가였다. 그는 2009년 1월 8일 아침 출근 길에 자신의 차 안에서 오토바이에 탄 괴한 투 명이 쏜 총탄에 머리를 맞았다.
선데이 리더는 위크라마퉁가가 타계한 며칠 뒤 그의 유고를 실었다. 그는 “내가 피살되리라는 건 오래 전 이미 쓰여 있었고 누구에 의해서일지라도 나와 있었으며 남은 건 언제인가 하는 것뿐”이라고 썼다.
위크라마퉁가는 그 전에 몇 차례 피살 위기를 넘겼다. 한번은 그의 집이 기관총 세례를 받았다. 그는 유고에서 주위 사람들이 자신에게 “왜 그런 위험을 무릅쓰느냐, 살해되는 건 시간 문제”라고 걱정했고 자신도 그걸 알고 있었다면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우리가 지금 말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말할 수 없는 사람들, 즉 인종적 소수, 소외된 이들, 박해받는 사람들을 위해 말할 사람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저널리스트의 길을 걷는 내내 내게 용기를 불어넣은 이는 독일 신학자 마틴 니묄러였다. … 니묄러의 시는 십대 때 처음 읽은 이래 계속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
그들은 처음엔 유대인을 잡으러 왔다.
유대인이 아닌 나는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다음엔 공산주의자를 잡으러 왔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노동운동가들을 잡으러 왔다.
나는 노동운동가가 아니었기에 발언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들은 나를 잡으러 왔다.
나를 위해 말해줄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라자팍사에게 이 말을 남겼다.
“슬프게도 당신은 젊은 시절 조국을 위해 품었던 모든 꿈을 불과 삼 년의 기간에 스스로 파괴했습니다. 애국심의 이름으로 당신은 인권을 짓밟았고, 이전 대통령들은 저리가라 할 정도로 부패를 방치했고 국고를 낭비했습니다.”
“당신은 마치 장난감 가게에 풀어놓인 아이 같이 굴었죠. 아, 이 비유는 적절치 않은 듯합니다. 장난감 가게에서 노는 아이는 당신처럼 그렇게 많은 피로 바닥을 적시지 않잖아요. 당신은 지금은 권력에 취한 나머지 보지 못하겠지만, 당신의 아들들이 그토록 엄청난 양의 피를 물려받을 것이라는 점에 대해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그 유산은 비극을 가져올 것이고요.”
“당신은 아들들이 큰 기쁨이며, 당신의 형제들에게 나라를 운영하도록 맡겨둔 뒤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다고 말했지요. 이제 분명해진 것은, 당신 말대로 ‘정부가 매우 잘 돌아간 덕에’ 내 아들 딸들은 아버지를 잃었다는 겁니다.”
독자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선데이 리더는 당신을 위해 있다. 당신이 스리랑카의 주요 민족인 싱할라족이든 타밀이든 무슬림이든, 낮은 계급이든 동성애자이든 반체제자든 불구이든 관계 없다. 선데이 리더의 편집진은 이전처럼 용기를 갖고, 굽히지 않은 채 두려움 없이 싸워 나갈 것이다. 다만 이 사명감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진 말아 주길 부탁한다. 또한 우리 저널리스트들이 어떤 희생을 감수한다면, 그것은 우리 자신의 명예나 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당신을 위한 것임을 분명히 하고 싶다. 당신이 저널리스트들이 희생할 가치가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내가 노력했음은 신이 알 것이다.”
백우진 기자 cobalt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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