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명진규 기자] 국내 주요 그룹 총수가 올해 신년사에서 이례적으로 갑(甲)질 문화에 대한 자성과 함께 조직 문화를 직접 바꾸어 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혀 주목된다. 일부 총수는 스스로 을(乙)에 입장에서 노력하겠다고 선언했다. 지난해 말 재계를 뜨겁게 달궜던 '땅콩 리턴'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구본무 LG 회장은 2일 신년사를 통해 "열띤 토론이 없는 일방적인 소통과 고객 가치에 맞지 않더라도 지시에 순응하는 문화로는 차별화된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없다"면서 전근대적인 지시문화의 폐해를 꼬집었다.
구 회장은 "LG 구성원 모두가 고객 가치를 창조하는 주인이 돼 스스로 이끌고 만들어 가는 문화를 정착시킬 수 있도록 리더들이 책임지고 노력하는 한편 나부터 그런 문화를 만드는 데 앞장서겠다"고 강조했다.
허창수 GS 회장 역시 변화를 주도하기 위해 유연한 조직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 회장은 "변화를 주도하기 위해 낡은 사고와 행동 패턴을 창조적으로 파괴하고 유연한 조직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면서 "건설적인 비판을 장려하고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작더라도 의미 있는 성공을 이뤄낼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경영에 사실상 복귀한 김승연 회장은 임직원들에게 낮은 을(乙)의 자세를 요구했다.
김 회장은 "높은 곳에 오르려면 낮은 곳에서부터 임해야 한다는 겸허한 마음으로 세상과 소통해야 한다"면서 "사회적 약자를 앞서 돌보고 그늘진 현장을 먼저 찾는 책임 있는 기업으로서의 소명도 소홀히 하지 말고 이를 통해 사업보국의 창업이념을 계승해 발전시키자"고 말했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 역시 존경받는 아름다운 기업을 위해 기업문화 개선에 솔선수범해 나서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박 회장은 "국민들로부터 존경받는 아름다운 기업을 만들기 위해 솔선수범하겠다"면서 "지탄받지 않고 약속한 바를 지키며 건실하고 신뢰받는 기업, 사회적 책임과 기업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사회에 공헌하는 기업을 만들자"고 당부했다.
재계는 그룹 총수들의 이 같은 신년사가 스스로를 위한 다짐이자 오너의 지시라면 무조건 듣는 경직된 조직 문화를 개선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했다.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은 "신년사를 통해 주요 기업 총수들이 조직 문화 개선에 관해 언급했는데 솔선수범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겠다는 의지가 돋보인다"면서 "경직된 조직문화를 바꾸고 유연한 기업 문화와 총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과감하게 듣고 나서면 우리 재계가 한걸음 도약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명현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지금까지 국내 주요 기업 총수와 종업원들의 소통이 거의 안 됐다고 보면 된다"면서 "일부 오너들이 종업원을 하인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대한항공 사건이 기업들에 경종을 울리고 경영자들이 나부터 바꾸겠다는 생각을 하고 나서 반갑다"고 말했다.
명진규 기자 ae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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