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26일 서울중앙지검 앞, 조응천 보이지 않고 ‘간첩 증거조작’ 피해자 유우성 출석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26일 오전 9시30분 서울중앙지검 앞. 영하 5도, 제법 매서운 날씨였다. 수십명의 기자들이 손에 입김을 호호 불어가며 누군가를 기다렸다.
현장에는 주요 방송사 차량들이 생중계를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사진기자와 방송촬영기자들은 포토라인을 설정한 뒤 뉴스메이커가 출두할 그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2014년도는 이제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 사회는 한해를 정리하는 연말 분위기에 젖어있지만 검찰은 오히려 더 바쁜 상황이다. 특히 성탄절 휴일과 주말 사이에 낀 12월26일은 주요 인사의 줄소환이 예정돼 있었다.
기자들이 추운 날씨에도 긴장을 늦추지 않으며 대기했던 이유는 ‘정윤회 동향 문건’ 사건의 핵심 인물인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조응천 전 비서관을 기다리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는 지난 5일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한 바 있다. 조 전 비서관은 서울중앙지검 검사 출신이다. 자신의 친정과도 같은 그곳에서 ‘포토라인’에 섰지만, 당황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오히려 여유가 느껴졌다.
조 전 비서관은 “주어진 소임을 성실하게 수행했고 가족과 부하직원들에게 부끄러운 일은 하지 않았다”면서 “검찰에서 진실을 성실하게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6일 오전 1시께 서울지검 조사실을 나선 뒤에는 정윤회씨와 대질신문도 마다하지 않겠다면서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조 전 비서관은 다시 출석 통보를 받았다. 이번에는 신분이 바뀌었다. 참고인이 아니라 피의자 신분이다. 다시 검찰 포토라인에 기자들이 대기했다. 조 전 비서관의 얘기를 듣고자 미리 질문을 준비했고, 질문을 대신할 ‘풀 기자’도 구성했다.
하지만 조 전 비서관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기자들에게 일거리(?)를 준 인물은 엉뚱한 사람이었다. 이날 검찰 출석 예정이었던 유우성씨였다. 그는 서울시 공무원 시절 간첩 혐의를 받았지만 증거가 조작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국가정보원과 검찰에 굴욕을 안겨준 인물이다.
법원에서 간첩 혐의와 관련해 무죄를 선고받은 유씨는 이날 자신을 간첩으로 몰아간 탈북자 A씨의 고소인 자격으로 검찰에 나왔다. 10여명의 기자들이 유씨 주변을 둘러싸고 그의 얘기를 들었다. 유씨는 탈북자 A씨가 현상금을 받으려는 목적으로 거짓 진술을 했다고 주장했다.
기자들은 열심히 유씨 얘기를 받아 적었지만 정작 기다렸던 인물은 그가 아니었다. 간첩 증거조작 사건도 올해 검찰을 뜨겁게 달궜던 현안 중 하나였지만, 지금의 ‘핫 이슈’는 아니다. ‘정윤회 문건’을 둘러싼 의문이 언론의 관심 사안이다.
이날 포토라인이 형성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나 조 전 비서관이 출석할 예정이었던 오전 10시가 넘을 때까지 그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전 10시10분이 지나도 마찬가지였다.
현장에 있던 기자들은 추운 날씨에 30분~1시간 가량 대기하던 상황이었다. 그때 조 전 비서관이 이미 검찰에 출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포토라인이 설정돼 있던 곳이 아닌 다른 통로로 이미 검찰에 출석한 것이다.
서울지검은 조 전 비서관의 친정과 같은 곳이다. 입구가 한 곳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결국 기자들은 조 전 비서관의 ‘생생한 얘기’를 듣지 못했다. 기자들은 빠르게 흩어졌다.
하지만 서울지검 앞 포토라인은 역할이 남아 있었다. 26일 오후 2시에는 통합진보당 이상규, 김미희 전 의원이 고소인 자격으로 출석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검찰은 김영환 북한 민주화 네트워크 연구위원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사건과 관련해 이상규, 김미희 전 의원을 고소인 자격으로 불러 조사할 계획이다. 26일 오후 서울지검 앞 포토라인은 또 다른 인물의 출석과 함께 다시 활기를 찾을 것으로 보인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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