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류정민 차장] '누군가는 만들고 누군가는 뿌리고 누군가는 캐낸다.'
영화 '찌라시:위험한 소문'의 홍보 카피다. '증권가 정보지(일명 지라시)' 때문에 대형 스캔들에 휘말리는 여배우의 사연을 담고 있다. 합법과 불법이 뒤엉킨 지라시 제작과 유통, 소비의 과정을 그려냈다.
그런데 영화보다 더 스펙터클한 일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다. 청와대발 지라시 논란은 12월 초겨울 추위도 녹일 기세다. 등장인물도 초호화 캐스팅이다. 대통령의 과거 비서실장, 친동생, '문고리 권력' 3인방 등이 관심의 초점으로 등장했다.
사건은 지난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은 1월6일 '靑비서실장 교체설 등 VIP 측근(정윤회) 동향'이라는 문건을 작성했다. 해당 문건 작성 사실은 한참이 지난 연말이 돼서야 언론보도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지라시 수준의 이야기일 뿐이라면서 의혹 확산을 경계했다. 작성 주체가 청와대 행정관 아닌가. 지라시 수준의 내용이라는 청와대 설명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지라시'는 원래 일본어 '지라시[ちらし(散らし)]'에서 나온 말이다. '흩뿌리다'라는 의미를 지닌 '지라스[ちらす(散らす)]'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흔히 '찌라시'라고 쓰지만 표준어는 '지라시'가 맞는 말이다. '선전지' '낱장종이' 등의 의미를 담고 있다. 예전에는 신문 사이에 끼워주는 광고전단을 지라시로 부르기도 했다.
지라시는 사전적 의미보다는 '증권가 정보지'를 지칭하는 말로 더 유명하다. '○○○보고서' 'CEO ○○○' 등 사설정보지 형태의 유료 지라시가 발행되고 있다. 수십 쪽 분량의 리포트 형태로 발행된다. 보안을 위해 PDF 파일로 전달하고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볼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지라시는 고급정보를 담았는지, 정보생산 주체가 믿을만한 소식통인지, 발행처의 공신력이 어떤지에 따라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월 구독료는 적게는 10만원 안팎에서 많게는 100만원을 넘나든다. 주요 기업 임원들이 지라시의 핵심 고객층이다. 이들은 연예인 사생활이 궁금해서 돈을 주고 지라시를 얻는 게 아니다. 지라시에는 기업활동에 대한 다양한 정보가 담겨 있고 정계, 재계, 관계 등의 동향도 있다.
수사기관 정보관계자, 국회의원 보좌관, 언론인 등이 정보를 교환하고 이를 토대로 지라시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지라시를 고급정보의 압축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지만 맹신은 금물이다.
실제로 지라시는 특정한 의도에 따라 역정보가 담길 때도 있다. 요즘은 카카오톡 등 메신저를 통한 지라시 내용 공유도 활발하다. 이처럼 정보 공유가 활발할수록 역정보를 노린 '작전'도 다양하게 전개된다.
'정윤회 동향 문건'도 바로 그러한 의혹을 담고 있다. 비선실세가 대통령 비서실장 교체를 위해 역정보를 흘리도록 지시했다는 문건 내용은 사실일까. 황당하면서 기가 막힌 주장 아닌가. 검찰은 문건에 담긴 의혹은 허위라는 쪽으로 결론을 내려는 분위기다.
검찰 발표는 의혹을 잠재울 수 있을까. 아니면 '수사 가이드라인'에 따른 예고된 결과라는 평가를 받을까. 진실과 허위의 경계선에 서 있는 청와대발 지라시 논란은 이제 클라이맥스로 향하고 있다.
류정민 차장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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