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1층, 지상 6층 대형쇼핑몰 입점상가들 가방, 핸드백, 지갑, 모자, 옷, 액세서리 등 모조품들 판매…35만 위안(약 70만원) 부르는 폴로상표 트랜치코트 150위안(약 3만원)에 구매
[아시아경제 왕성상 기자] 지난달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약 14억명 인구의 거대중국시장에 기대를 거는 사람들이 많다. 관세장벽이 걷히고 관세율이 낮아져 수출·입에 크게 도움 될 것이란 분석에서다.
그러나 상당수 중소기업들은 짝퉁제품이 성행하는 중국시장에 선뜻 나가길 망설이는 분위기다. 특허, 상표권 등 지식재산권 뒷받침이 약한 지방영세기업들은 더욱 그렇다는 게 관련기관들 분석이다.
최근 특허청, 한국지식재산보호협회, 한국의류산업협회, 한국식품산업협회,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 관계자 등으로 이뤄진 ‘중국 지재권 침해조사전문기관 실태조사 민관합동조사단’의 일원으로 북경 최대 짝퉁상가로 꼽히는 ‘슈수이제(秀水街)’를 돌아봤다.
◆‘베이징 명소’로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등 35개국 지도자와 부인들도 쇼핑=지난 11월28일 오후 2시 중국 북경시내 중심가 SK빌딩, LG그룹 쌍둥이빌딩과 큰길을 사이에 두고 맞보고 있는 짝퉁상가 슈수이제. 붉은 색의 현수막이 곳곳에 내걸려 있어 얼핏 보면 유통업체 사옥 같지만 짝퉁제품들을 파는 전문쇼핑몰이다.
북경지하철 1호선이 지나 주변엔 각 나라 대사관과 국제비즈니스 업체, 단체들이 많은 이곳의 슈수이제가 ‘베이징 명소’가 된 지 꽤 오래됐다. 만리장성, 자금성, 이화원 등 북경지역 명승지 못잖다.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등 35개국 지도자와 부인들이 쇼핑을 해 화제 되기도 했다.
해마다 수십만 명의 외국인관광객들이 찾아 북경 명소가 된 이곳엔 이날도 싼값에 물건을 사려는 국내·외 손님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서울 남대문·동대문 상가를 떠올리게 한다.
지하 2층, 지상 6층인 건물엔 1~2평 또는 2∼3평짜리 가게들이 줄줄이 문을 연 가운데 짝퉁제품들을 버젓이 팔고 있었다.
◆진품과 아주 비슷한 SA급 짝퉁제품만 팔아=쇼핑몰엔 층별로 파는 제품이 달랐다. 지하 2층은 매장 확장공사 중이었고 ▲지하 1층은 가방, 핸드백, 지갑, 모자 등 소품 ▲지상 1층은 전자기기, 남성복 ▲2층은 여성복 ▲3층은 비단, 옷감 ▲4층은 보석, 액세서리를 판다. 5층은 VIP구역으로 은행과 고급피혁·안경·다류 취급점, 국제진주무역센터 등이 있다. 지하 1층엔 우체국과 환전상까지 있어 현장에서 산 물건을 국내·외로 곧장 보낼 수도 있다.
맨 위인 6층은 식당가로 중국식당을 비롯해 일식당, 양식당, 한국식당 등과 슈퍼마켓이 관광객들을 맞는다. 점포들 중엔 남녀종업원들이 지나가는 손님을 손짓하며 불러들이기도 했다.
쇼핑몰에 들어서기 전 한국의 민관합동조사단을 인솔한 안내자는 “이곳엔 진품과 아주 비슷한 SA급 짝퉁제품만 팔고 있다”며 “종업원들이 처음에 터무니없이 높은 값을 부르니 흥정을 잘해야 바가지를 쓰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종업원이 1000위안을 달라고 하면 100~200위안으로 낮춰 제시하라는 것이다.
지상 1층 남성복코너에 관광객인 것처럼 해서 들어간 한 조사단원은 35만 위안(약 70만원)을 달라는 폴로상표의 남성용 트랜치코트를 150위안(약 3만원)에 살 수 있었다.
이곳엔 버버리, 구치, 프라다, 샤넬, 루이뷔통 등 세계 유명브랜드는 물론 성주그룹의 ‘MCM’, 이랜드그룹의 ‘티니 위니’ 등 국내 유명제품들도 보였다.
한류바람을 타고 중국 사람들에게 인기인 우리나라 코리아나화장품 ‘Coreana’는 ‘Gaoriana’로 표기돼 팔리고 있었다. 영문제품명 아래 위에 적인 한글과 한자는 한국제품과 똑같이 돼 있어 자세히 보지 않으면 헷갈리기 십상이다.
조사단원들의 한명인 이재길 한국의류산업협회 관리·법무팀장(법학박사)은 “얼마 전 ‘2014 F/W 서울콜렉션’ 패션쇼에서 선보인 강기옥 디자이너의 안경 쓴 얼굴을 디자인한 짝퉁 패딩점퍼가 매장에 내걸려 있었다”며 “서울에서 패션쇼가 열리고 한 달만 지나면 모조품이 팔리는 곳이 중국시장”이라며 중국인들의 짝퉁제조·유통속도에 혀를 내둘렀다.
◆전광판에선 ‘짝퉁 발견하면 당국에 신고하라’ 경고문구 눈길=이처럼 짝퉁제품들이 공공연하게 팔리고 있음에도 쇼핑몰 한쪽에 설치된 전광판에선 ‘짝퉁을 발견하면 당국에 신고하라’는 경고문구가 흐르고 비슷한 내용의 현수막도 걸려 있었다. 손님들 발걸음이 잦은 1층 엘리베이터 위에 내걸린 빨간색 천의 현수막엔 ‘모조품은 사지 말고, 진품만 사라’는 당부문구가 생뚱맞게 보였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전체인원 152만명을 동원, 지식재산권 침해현장을 단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으로부터 의뢰받아 짝퉁제품을 잡아내는 민간회사들도 전국적으로 2만 곳에 이르나 모조품들이 사라지지 않아 중국 당국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기자에게 이곳을 안내한 현지가이드는 “슈수이제 등이 활기를 띄는 건 중국의 심한 빈부격차가 짝퉁제품 소비를 떠받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에선 짝퉁을 ‘산자이(山寨)’라고 한다”며 “원래 산에 목책을 두른 산적의 소굴을 일컫는 것으로 중국 사람들은 이를 정부 관리를 받지 않는다는 의미로 그렇게 말한다”고 설명했다. 베끼긴 했으나 상표나 모양이 조금씩 다른 제품을 일컫는다는 얘기다.
◆지난해 중국 일어난 지식재산권 침해사건 25%↑=지난해 중국서 일어난 지식재산권 침해사건은 8만3100건으로 2012년(6만6227건)보다 25% 이상 늘었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이란 지적이다. 중국 내 짝퉁제품거래도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고 않아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짝퉁제품들은 온라인상에서도 유통되고 있었다. 중국 최대 온라인쇼핑몰인 알리바바와 타오바오 등에서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버버리, 구치, 프라다, 샤넬, 루이뷔통 등 세계 유명브랜드기업들이 최근 중국 슈수이제 점포들을 상대로 고소했다. 이들 5개 유명기업은 슈수이제에서 팔리는 가방, 지갑, 구두, 옷 등 100여종의 짝퉁제품들을 증거로 250만 위안(약 3억2500만원)을 배상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이태인 한국지식재산보호협회 지재권분쟁대응센터장은 “최근 한·중FTA 체결로 한류브랜드제품의 중국진출이 더 늘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도 중국의 수도 중심부인 슈수이제 등 대형 상가에선 모조품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센터장은 “따라서 중국시장에 뛰어들었거나 준비 중인 우리 기업들은 특허, 상표 등 지재권 침해예방 및 분쟁대응에 적극 관심을 갖고 힘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왕성상 기자 wss404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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