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맞벌이 부부 되돌아보니 … 10년새 연봉은 2배 전셋값은 4배
[아시아경제 조인경 기자] #2003년 서울 염리동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할 때만 해도 A(39)씨 부부는 뿌듯하고 행복했다. 방 두 칸의 39㎡짜리 작은 전셋집은 재개발 예정지에 있지만 신축 빌라여서 전세보증금이 7500만원이나 됐다. 결혼 전 모은 돈을 탈탈 털어 오롯이 두 사람의 힘으로 마련했다. 시내까지 출퇴근하기 가까워 차비를 아낄 수 있었고 짐을 둘 곳이 부족하니 살림은 최대한 사지 않기로 했다. 부부가 각각 200만원 남짓한 월급을 받아 한쪽 월급을 고스란히 모으는 식으로 악착같이 저축을 늘려갔다.
이 부부의 현재 모습은 애쓴 만큼 나아져 있을까 추적해봤다. 이들 부부는 2년 뒤 집주인한테서 전세금을 2000만원 올려달라는 요구를 받는다. 또 다시 2년 후에는 3500만원을 올려 보증금이 1억3000만원으로 커졌다.
날림으로 지은 빌라는 여름이면 벽이 축축해지고, 겨울이면 결로가 나기 일쑤였다. 아기가 태어나자 부부는 아파트 전세를 찾아 경기도 용인으로 이사했다. 방 3칸짜리(전용면적 84㎡) 아파트를 1억9000만원에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2년 후 여지없이 집주인은 다시 보증금을 2억4000만원으로 올렸다. 그나마도 월 40만~50만원짜리 반전세로 돌리고 싶다는 주인에게 통사정을 해 전세를 유지한 것이다. 출퇴근길이 멀다 보니 집에 돌아와 아이를 돌볼 시간조차 없는 아내는 다시 서울로 이사가기를 원했다.
지난해 말 집주인이 재계약은 반전세로 하겠다고 선언하자 부부는 다시금 서울로 이사를 감행했다. 어차피 월세를 내야 한다면 출퇴근 거리라도 줄이겠다는 생각이었다.
다시 둥지를 튼 곳은 서울 마포의 전용면적 59㎡ 아파트(전세 3억3000만원). 보증금 2억4000만원, 월세 50만원짜리였다. 집이 좁아져 세간살이를 줄여야 했다. 부동산 중개수수료와 이사비용, 도배비용을 쓰고도 벌써 월세만 600만원이 나갔다.
맞벌이를 하고 있지만 버는 돈만큼 써야 하는 돈이 많아졌고 저축은커녕 이제부터는 정말 '빚을 져야 할지 모르는' 두려움을 안고 사는 고달픈 10년차 부부가 돼 버렸다.
A씨가 2002년 첫 취업했을 때 연봉은 2300만원이었다. 많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적은 월급도 아니었다. A씨는 "신혼여행 이후로는 해외여행을 다녀본 적도 없고 그 흔한 자가용도 사지 못했다"며 "중간에 전세금 올려줄 돈이 부족한 걸 아는 양가 부모님이 2000만원씩 보태주신 덕분에 숨통이 트였다"고 말했다.
그는 "2002년 첫 취업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연봉은 230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2배 됐지만 내 식구 누울 전셋집은 4배가 올랐다고 봐야 한다"며 "그나마 전세라면 보증금이 유지되기라도 하지 매달 꼬박꼬박 50만원을 내는 게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고 한숨을 쉬었다.
월세 시대가 열리며 서민들의 허리가 휘고 있음을 한눈에 보여준다. 외환위기로 집값이 내려갔고 한편에선 더 내려갈 것이라며 환호하고 엄포를 놓고 있는데, 전세금은 올라가고 월세 전환이 급증하며 서민의 삶은 더욱 고단해지고 있는 것이다.
시장의 변화를 개인이 극복하기 버거워져 주거비 부담에 정부가 틈날 때마다 강조하는 내수활성화는 공염불에 그치고 있다.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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