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부자인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주 빌 게이츠가 최근 자신의 블로그에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저서 '21세기 자본'을 읽은 소감을 밝혔다. 그는 소득 및 재산세에 대한 누진세를 강화하자는 피케티의 주장에 동의하면서 "자본주의는 불평등의 심화를 스스로 치유할 수 없어 부의 집중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되나, 정부는 그 눈덩이 효과를 상쇄시킬 건설적인 역할(constructive role)을 맡을 수 있다"고 했다. 여기서 '건설적 역할'이란 조세정책을 의미한다.
또 다른 미국의 기업가이자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도 "2020년 올림픽 선수단을 2000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의 장남들로 채울 수 없다"며 장차 국가를 강하게 만드는 최선의 방법으로 상속세를 유지하고 이를 재원으로 교육과 연구에 집중적으로 투자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들은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과 같다는 성경 구절을 감히 뒤집는 멋진 사람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세금을 잘 활용해 국민을 건강하게 살게 하고 국가를 부강하게 만들자는 것이다. 빚은 지지 말고.
우리나라에서도 소득과 부의 양극화가 미국 못지않게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정부는 나름 여러 복지 제도의 도입을 통해 이를 완화하고자 노력하고는 있지만, 재원 마련 방안에 이르면 절벽처럼 무관심하거나 애써 외면한다. 재정적자가 누적되면 외환위기와 같은 국가부도 사태가 올 수도 있다. 작은 고통으로 감내할 수 있는 것을 때를 놓치면 국민과 기업들에 더 큰 고통을 안겨줄 수 있다.
유럽식 복지사회를 구현하려면 추가적인 세금 부담이 필요하다. 이 경우 미국의 부자들은 자기 주머니에서부터 먼저 가져가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재벌이나 부자는 물론 정부조차 증세론이 거론되면 '경기 활성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되풀이한다. 그러면서 고작 부동산 경기 활성화 타령이다. 과거 부동산 투기의 폐해를 벌써 잊었는가.
현 정부처럼 적자재정 정책이 지속되면 '2015년에 지급할 기초연금은 2035년에 태어날 아이들이 갚아라'라고 하는 것과 하등 다를 게 없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들에게까지 부담을 주면서 복지 제도를 실행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부끄럽지 않은가.
그렇다면 어디서 어떻게 복지 재원을 마련할 것인가. 개인소득, 법인소득, 재산 및 소비 분야 중 당장은 법인세가 가장 합당하다고 본다. 그 이유를 살펴보자.
첫째, 우리나라 법인세율은 높지 않다. 세법상 명목세율이 22%라지만 비과세나 감면을 제외하면 실제 법인세율(실효세율)은 16.8%에 불과하다. 선진국(23% 안팎)에 비해 한참 낮다.
둘째, 정부는 우리나라 법인세가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약 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3% 수준)보다 높다는 점을 들며 법인세율 인상 주장에 소극적이다. 하지만 이는 2000년 이후 연평균 법인소득 증가율(16.5%)이 가계소득 증가율(2.3%)보다 훨씬 높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개인통장보다 법인금고에 훨씬 많은 돈이 가파른 속도로 쌓였다. 따라서 여기서 세금을 더 거두는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니다.
셋째, 법인세율을 높인다고 해서 기업들이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거꾸로 법인세율을 낮추면 투자하나? 아니다. 기업은 수익성이 있다 싶으면 투자한다. 직전 이명박 정부 때 법인세율을 낮췄지만 투자는 제자리걸음이었다.
끝으로 법인세율을 올릴 경우 법인소득을 감소시키고 주주들의 배당소득도 줄어들 수 있지만 이는 복지혜택을 받는 계층과는 거의 관련이 없다. 즉 법인세율 인상 자체가 소득의 재분배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법인세율은 올리는 것이 합리적인 방향이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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