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 요즘 국회 본청에 있는 새누리당 정책위의장과 기획재정위원장 방에는 정부 고위인사, 동료 국회의원들의 방문이 줄을 잇고 있다. 방문객이 몰릴 때는 분 단위로 면담 일정을 쪼개야 할 정도라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이들이 소위 여권 실세를 찾는 목적 가운데 십중팔구는 예산을 부탁하기 위해서다. 여야 원내대표실에도 비슷한 이유로 면담을 요청하는 사례가 많다.
지난해까지는 예산을 반영해달라는 부탁을 국회 예결위 소속 여야 의원들에게 직접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했지만 올해는 '실세'라는 우회로를 택하는 사례가 늘었다는 것이다.
올해 실세를 찾는 발길이 잦아진 가장 큰 이유는 여야가 내년 예산안 심의에서 소위 '쪽지예산'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쪽지예산을 직접 꽂을 통로가 막히자 우회로를 찾았다는 얘기다.
물론 여권 실세에 부탁한다고 해서 이 같은 요구가 전부 내년 예산에 반영되는 것은 아니다. 상임위 차원에서 논의된 예산안건을 '잘 봐달라'고 부탁하는 걸 쪽지예산이라고 싸잡아 비난할 수도 없다. 게다가 예결위 소속 여야 간사들은 "올해 심사과정에서 지금까지 쪽지예산 사례가 보고된 적이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그럼에도 정치권 실세에게 쪽지예산을 부탁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한 야당 의원 관계자는 "찔러넣는 예산이 그렇게 쉽게 근절되겠냐"는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예산을 전문적으로 살피는 NGO단체 관계자는 "지역구 표밭을 관리해야 하는 국회의원들이 예산을 늘려달라는 지역의 요구를 무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 큰 이유는 예산심사 과정이 투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야는 기본적으로 예산심사를 언론에 공개하는 것을 불편해한다. 그나마 감액은 국회 이미지 개선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조금이나마 언론에 문호가 열리지만, 증액심사는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된다. 증액과정에서 어떤 예산이 어떻게 반영되는 지 알 리 만무하다.
"쪽지예산은 없다"는 여야 간사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믿을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최일권 기자 ig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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